요한 10장, 11-18절;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2024, 2027)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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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18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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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양 떼를 이끌고 보호하는 목자의 표상은 구약 성경에서 때로는 하느님께, 때로는 메시아 임금에게, 때로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을 “착한 목자”라고 부르며, 그분께서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바쳐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셨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목자의 직분을 완전하게 실현하신 분이심을 밝힙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는 말씀 속에 이미 예수님의 거룩한 십자가 희생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양 떼를 책임지지 않는 삯꾼과는 달리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목자의 본분을 완성하셨습니다.

성소는 하느님의 거룩함에 이끌려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봉헌하는 삶을 뜻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혼인성사를 통해 가정에 봉사하는 가정 성소와, 수도 서원을 통해 복음 삼덕을 실천하는 수도 성소,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직무 사제직에 동참하는 거룩한 사제성소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양들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잃은 양을 찾아 나서시며, 목숨을 바쳐 양 떼를 지키며 보여 주신 목자의 삶은, 저마다 받은 성소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가치를 지닙니다.
성소 주일인 오늘은 특별히 교회를 위하여 봉헌 생활과 사제직에 자신을 바치는 수도자, 신학생, 성직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물질적 세속화의 유혹이 거세지고 영적 가치들이 사라지는 우리 시대에,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을 증언하려고 결단한 수도자, 신학생, 성직자들이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사목헌장 4항)하며 살아가는 소중한 소명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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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이야기 해봅시다.

2. 신앙생활을 하며 “주님과 가까워진 것 같다”라고 느낀 경험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어떻게 부르시고 그 목적은 무엇인지 이야기 해봅시다.
(아직 없었다면… “아 이게 주님의 부르심이 아니었나?”라고 뒤늦게 깨달은 경험이 있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3. 목자와 양들의 관계에서 우리는 주님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지 묵상해보고 목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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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오늘의 묵상
오늘은 성소 주일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소,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신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첫영성체를 하고 복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신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지금까지 신학생으로 잘 지내고 있는데,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고 그저 나만이 바라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에 휩싸여 신학교를 그만둘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밤낮으로 기도해 주시던 부모님과 교우들의 얼굴이 떠올라,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오던 사제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 저는 죽어도 신부가 된 다음에 죽어야겠습니다. 처음부터 제 마음에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넣어 주지 마시지, 이제 와서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시면 어찌합니까? 절대 안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 박박 우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기도처럼 될까 봐 주님의 기도도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악을 쓰며 한 달을 씨름하니 모든 힘이 빠져 나중에는 입을 열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런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아!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 하느님과의 일치, 성인이 되는 것이구나! 그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한 길이 여럿 있는데, 어떤 이는 사제성소, 어떤 이는 수도 성소, 어떤 이는 혼인 성소를 선물로 받는 것이구나. 그 선물은 더 귀하고 덜 귀하고, 크고 작음이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느님이라는 큰 산을 오르는 여러 길 가운데 하나일 뿐이구나. 주님께서 ′너의 길은 이 길이 아니고 저 길이다.′ 하신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가면 되는구나. 다만 지금은 신학교에 있으니 내가 받은 선물은 사제의 길이겠구나. 그렇다면 나는 그 선물에 합당한 이인가?’
그래서 그날부터 제가 받은 그 엄청난 선물에 합당한 이가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그것을 실천하여 잘 준비하고자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선물은 무엇이고, 그 선물에 합당한 이가 되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은 특별히 사제성소와 수도 성소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응원하는 날입니다. 그들이 받은 성소의 길을 잘 걸어가도록 기도하고 힘이 되어 줍시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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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요한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나는 문이다.”, “나는 길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는 형식으로 “나는 ……이다.”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나는 목자다.”가 아니라 “나는 착한 목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나쁜 목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에제키엘서나 즈카르야서를 비롯한 구약의 예언서들에서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있었던 나쁜 목자들을 비난합니다. 목자가 약한 양은 전혀 돌보지 않는 가운데 오히려 튼실한 양을 잡아먹거나 양털을 깎아서 돈만 벌려고 한다면 분명 나쁜 목자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런 나쁜 목자들을 없애시고 당신 마음에 드는 착한 목자를 보내시겠다고, 아니 당신께서 몸소 양들을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양털만 깎아 팔아먹는 나쁜 목자가 아닌,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성소 주일에는 여러 가지 행사도 하면서 많은 젊은이가 착한 목자 예수님을 따라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기도도 하겠지요. 목자가 되려고 한다면 반드시 착한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이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삶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는,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잘못된 것입니다. 따뜻한 양털 덮고 세상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목자가 되는 것은 성소가 아닌 하나의 직업일 뿐입니다. 착한 목자가 되려면 먼저 침묵과 인내 가운데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성소 주일에 복자 바오로 6세 교황님과 함께 기도합시다. “오소서 성령님,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는 사제들에게 넓은 마음을 주소서. 침묵 가운데 힘차게 타이르시는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으며, 온갖 불미한 야심과 덧없는 인간 경쟁을 전혀 모르는 마음, 거룩한 교회만을 걱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보려는 넓은 마음을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