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오늘 전례 말씀은 모두 어떤 ‘때’를 암시하면서 우리가 기뻐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바니야 예언자는 시온에게 기뻐하라고 권고하지만, 그 당시 예루살렘의 시대 상황과 분위기는 기뻐할 만한 처지가 아니었기에, “두려워하지 마라.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는 말씀은 황폐해진 예루살렘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 줍니다. “늘 기뻐하십시오.”라고 권면하는 바오로 사도의 처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온갖 수고를 감내하면서 전교 여행을 하였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보람이나 칭찬이 아니라 오히려 박해와 투옥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 가운데서도 특히 기쁨이라는 주제를 강조하는 필리피서는, 놀랍게도 그가 감옥에서 쓴 편지였습니다.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바오로 사도가 그 답을 알려 줍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스바니야도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니”라고 말하면서 바오로와 그 맥을 같이합니다.
너무 교과서적인, 그래서 식상한 대답같이 여겨지십니까? 성탄이 왜 기뻐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까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성탄 선물 때문에 기뻐하실 나이는 이미 지나신 것 같고, 쉬는 날이라서 기뻐하신다면 신자가 아닌 사람이나 다를 것이 없겠지요. 하루하루 살아가기 쉽지 않은 이 세상 안에서, 주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살을 취하시어 우리 안에 거처를 마련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기에 우리는 기뻐하는 것이며, 아니,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기뻐해야 할 이 ‘때’를 준비하는 자세를 세례자 요한은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하고 알려 줍니다. 한마디로 요한의 이 가르침은 작은 사랑을 실천하고 직업윤리를 지키며,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분수에 맞게 살면서 당연한 정의를 실천하라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출저:https://maria.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