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6장, 16-18절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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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요한 6장, 16-18절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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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하나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삶 안에서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우리는 잘 압니다. 서로 사랑해서 하나가 된 부부도 계속 하나가 되어 그 행복을 유지하며 살려면 수많은 수고를 겪고 위기를 극복해야 하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강력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도 수많은 갈등과 질곡을 넘어서야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 다른 위격을 지니시면서도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시고, 유일한 실체로서 존재하신다는 삼위일체의 신비는, 우리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이면서도 인간의 머리로는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입니다. 세 분이시면서 동시에 한 분이시라는 존재론적 모순의 논리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신비는 존재론이나 논리학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끝없는 애정으로 성자를 바라보시고, 성자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을 향해 끓어오르는 사랑으로 보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분 사이에 흐르는 그 뜨거운 사랑 자체가 바로 성령이시라는 어느 신부님의 설명이, 세 분이 동시에 한 분이라는 이 교리를 가슴으로 느끼게 해 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이 가장 뜨거운 신비에 참여하는 행복한 존재입니다. 이로써 우리의 삶 자체가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와 사랑에 푹 빠진 기쁨의 잔치가 될 것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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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나 단어를 이야기 해봅시다.

2.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가가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희생을 하며 예수님과 동참하고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아직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면 어떤 활동이 예수님과 동행하는 희생인지 이야기 해봅시다.

3. 성체를 모시면서 “예수님과 가까워 졌다, 하나가 되었다”라는 느낌을 받은 경험이 있는지 묵상해 보고 성체와 성혈을 정성스럽게 모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4. 예수님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다가 그분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제대로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이야기 해봅시다.

5. 결심하기: 오늘 말씀(묵상/동영상)을 통해 내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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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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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목사의 질문/김웅렬 신부님의 응답

1.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느 것이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
A. 우리들은 태어났을 때 작은 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음식을 통해서 우리든의 살과 뼈가 자라난다. 분명히 먹은 것은 음식이지만 우리의 살과 피로 변한다. 들어가는 것과 만들어진 것은 다르다.
빵과 피가 주님의 몸과 피가 되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러 음식을 먹지만 그 음식이 살과 피와 뼈를 만든다.

2. 예수 그리스도가 그 작은 밀가루 제병 안에 계시다는 것이 가능한가?
A. 주위에 풍경을 보아라. 풍경에 비해서 당신의 눈이 얼마나 작은지. 당신의 작은 눈 안에 저 드넓은 풍경이 들어간다.

3. 한 몸이신 예수님이 모든 제단과 축성된 제병들 안에 동시에 계시는 것이 가능한가?
A. 하느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거울을 바닥에 던져봐라. 작은 조각 조간 모두, 같은 이미지를 담고 있다. 온전한 거울 안에도 내가 보였고 바당에 던져져 깨진 유리 조각 안에도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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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사제가 되어 처음으로 어버이날 아침에 부모님께 찾아갔습니다. 그동안에는 신학교에서 전화로만 축하를 드렸는데, 이번에는 직접 뵙고서 선물과 용돈을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부모님께서 저를 보시고 하신 첫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아침 먹었니? 밥 차려 줄까?” 평소에도 부모님 댁에 가면 부모님께서 차려 주신 밥을 먹고는 하였습니다. 부모님께서 주시는 내리사랑을 그대로 받는 것만으로도 효도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말입니다. 제가 밥을 차려 드려도 부족할 텐데 어버이날마저도 여전히 밥을 차려 주시려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면서도 감사하였습니다.
여러 해를 외국에서 지낼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칠순 가까이 되신 어머니께서 주민 센터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시고 이메일 계정을 만드셨습니다. 아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보내신 이메일에는 어김없이 먹는 것과 관련된 질문이 있었습니다. “한국 음식은 좀 먹니?” “생일인데 미역국은 누가 끓여 주니?” “살이 너무 빠지지는 않았니?”
이렇게 자식이 잘 먹고 지내는지 늘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하느님께서도 가지고 계십니다. 아니 그보다 더하십니다. 단순한 음식, 썩어 없어지는 양식이 아니라 영적인 음식,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양식을 걱정하시어 우리에게 당신 아들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사 때마다 이 사랑의 양식을 받아 모시고 있습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