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3장,16-18절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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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6-18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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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제 부모님을 잘 알고 있는 교우분들 가운데 어느 분이 말씀하십니다. “신부님은 아버지를 참 많이 닮으셨네요.” 옆에 있는 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은 어머니를 쏙 빼닮으셨어요.” 저는 이 두 분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였습니다.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닮으셨어요.”
사실 생각해 보면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태생적으로 닮았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분이 서로 사랑하고 한 가정을 함께 책임지며 살아가는 동안 습관, 식성, 생활 방식, 가치관 등을 공유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까지도 비슷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비단 제 부모님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본당 주임 신부 시절, 수많은 부부를 바라보며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라는 말이 떠오를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닮은 정도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를 이루시지 않겠습니까? 유한한 사랑을 하는 이들이 서로 닮는데,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영원무궁토록 무한한 사랑을 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세 위격은 서로의 존재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였듯이 사랑은 본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는 상대방을 자기 방식대로 끌어들이지 않고, 상대방의 존재 방식을 있는 그대로 잘 간직하도록 애써 줍니다. 그리하여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서로 일치하시는 가운데서도 성부의 위격이 다르고 성자의 위격이 다르고 성령의 위격이 다릅니다.
그렇습니다. 삼위일체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그리고 외아드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이 사랑의 신비 안에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매 순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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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이야기를 해봅시다.

2. 신앙생활을 하며 이성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교리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이야기 해보고 이해하기 힘들어도 주님의 가르침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3. 신앙생활을 하며 “성령이 나에게 오셨나? 성령이 충만하다. 주님과 가까워졌다”라는 느낀 경험이 있는지 묵상해 보고 어떻게 하면 성령님이 내 안에서 그리고 나를 통해 더욱 일하실 수 있도록 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하기: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떻게 생활해야 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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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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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하나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삶 안에서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우리는 잘 압니다. 서로 사랑해서 하나가 된 부부도 계속 하나가 되어 그 행복을 유지하며 살려면 수많은 수고를 겪고 위기를 극복해야 하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강력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도 수많은 갈등과 질곡을 넘어서야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 다른 위격을 지니시면서도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시고, 유일한 실체로서 존재하신다는 삼위일체의 신비는, 우리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이면서도 인간의 머리로는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입니다. 세 분이시면서 동시에 한 분이시라는 존재론적 모순의 논리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신비는 존재론이나 논리학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끝없는 애정으로 성자를 바라보시고, 성자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을 향해 끓어오르는 사랑으로 보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분 사이에 흐르는 그 뜨거운 사랑 자체가 바로 성령이시라는 어느 신부님의 설명이, 세 분이 동시에 한 분이라는 이 교리를 가슴으로 느끼게 해 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이 가장 뜨거운 신비에 참여하는 행복한 존재입니다. 이로써 우리의 삶 자체가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와 사랑에 푹 빠진 기쁨의 잔치가 될 것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