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장,29-34절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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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9-34

그때에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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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알아볼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세주를 위해 새로운 길을 준비하는 요한에게 특별한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었을 때 일어난 거룩한 표지에 대해서 증언합니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례의 은총과 효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예언자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완전한 정화의 은총과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가져다줍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20 참조) 세례를 받을 때, 우리에게 실제로 이루어진 현상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세례자 요한처럼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로마 8,16).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의 마음과 영혼 안에 움직이고 계시는 성령을 망각합니다. ‘영’은 영혼의 상층부이며 하느님을 감지하는 장소입니다. 성령께서는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움직이고 계시므로 그분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잠심(潛心)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온 마음과 정신을 그분에게 향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받은 축복이 얼마나 큰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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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이야기를 해봅시다.

2.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알아볼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와 같이 예수님을 체험하거나 예수님의 존재를 느꼈던 경험이 있었는지 이야기 해보고 그런 느낌을 크게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이야기 해봅시다.

3. 주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나는 어떻게 증거하면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하기: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떻게 생활해야 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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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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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증언을 한다는 것은, 증언할 대상에 대한 탐구나 분석이 아닙니다. 증언은 제 삶의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간절한 외침입니다. 오늘 복음의 “어린양”은 그런 외침을 드러내는 대표적 표상입니다. 유다 사회가 간직한 “어린양”의 의미는 자신을 희생하여 타인을 살리는 대속이었습니다(탈출 12장; 이사 53장 참조). 제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유다 사회는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기가 버거울 만큼 짓눌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절망은 하느님을 통하여 희망을 꿈꾸는 것으로 바뀌고, “어린양”은 미래에 펼쳐질 희망찬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요한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입을 빌려, 오시는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규정합니다. 당시 사회는 세상을 죄악이 가득한 곳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세상 한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규정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직접 주관하신다는 희망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십니다. 죄악은 세상을 단절시키고 갈라놓고 찢어 놓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느님으로 오셨고(요한 13,1 이하), 당신께서 원하시는 세상은 서로 사랑하는 친교의 자리입니다.증언을 하는 것은 우리 각자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 세상에 오신 하느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사유하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은 “어린양”의 표상을 통하여 세상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화합과 신뢰, 사랑임을 일깨웁니다. 화합과 신뢰, 사랑은 요한 복음이 쓰인 그 시대를 살아간 신앙 공동체의 간절한 바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무엇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가,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