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4장, 15-21절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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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15-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19 이제 조금만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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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사랑은 함께 머무는 일입니다. 아버지와 아드님께서 함께 머무시고 그 아드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는 사랑으로 하나가 됩니다. 이런 일치를 도와주시는 분께서 성령이십니다. ‘보호자’로 번역된 성령께서는 그 말마디의 본디 의미에 따라 ‘누군가를 돕기 위하여 불린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아 낙담하고 슬퍼하는 1세기 말엽의 신앙 공동체에,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여전히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성령을 통하여 일깨웁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우리 신앙인의 삶 안에는 홀로 버려지는 이들이 없어야 합니다. 한처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 사이를 ‘알맞은 협력자’로 규정하셨고(창세 2,20 참조), 성령께서는 서로서로 도울 수 있도록 교회 안에서 함께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사도 2장 참조).

성령과 함께하는 교회는 선과 악의 대립으로, 정의와 불의의 대립으로,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선을 지향하되 악을 만나 회개로 이끌고, 정의를 외치되 불의함을 함께 아파하며 고쳐 나가고, 진보의 개혁을 보수의 가치로 함께 고민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입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좋은 것이 좋다는 식이 아닙니다. 모든 이가 회개 안에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머물게 하려는 것입니다.
모든 이가 하느님과 함께 머물게 하시고 함께 살아가게 하시려고 오늘도 성령께서는 활동하고 계십니다. 성령을 가로막는 것은 하느님과 이루는 일치를 가로막는 것이고, 우리의 이분법적 사고와 단죄는 그 일치에 가장 큰 걸림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물리쳐야 할 악마가 아니라 회개와 용서로 보듬어야 할 작은 이들이 있을 따름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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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이야기를 해봅시다.

2.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든든한 보호자를 만난 경헝을 이야기 해봅시다. 어떻게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었는지 앞으로 이런 보호자를 만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3. 나의 삶이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공동체(나)와 성령과 함께 하지 못하는 공동체(나)의 차이는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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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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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과거에는 ‘성령’을 ‘성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초월적 신의 의미보다는 ‘바람, 숨결, 기운’과 같은 영의 활동이 성경에서 증언하는 보호자, 협력자로서 우리 곁에 숨결처럼 머무시는 예수님의 영을 적절하게 표현하기에 지금은 ‘성령’으로 부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며 예수님께서 보내 주신 하느님의 살아 계신 영이십니다.
초기 제자들의 복음 선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병자들의 치유와 같은 표징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표징을 본 것만으로는 믿음을 얻지 못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할 때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말씀은, 표징을 보고 그저 감탄하고 놀라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내적인 회심과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삶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용기를 성령께서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성령의 도우심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할 수 있는 증언의 힘은, 지혜의 성령께 의탁하고, 기도의 응답에 따라 세상의 거짓과 위선을 식별해 내고, 예수님 말씀에 담긴 진리와 선을 담대히 따른 체험에서 나옵니다.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결코 쉽게 믿음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을 개인적인 은사의 원리로 여깁니다. 그러나 교회는 개별 신자가 받은 성령의 은사가 언제나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에, 누가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일으킨다면, 그 사람의 은사는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 거짓 은사라고 가르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참조). 그 밖의 것들은 악에서 나온 것임을 명심합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