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1장 1-45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마르타 마리아 나자로)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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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3-7.17.20-27.33ㄴ-45

그때에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3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이르셨다.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5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셨다. 6 그러나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 7 예수님께서는 그런 뒤에야 제자들에게, “다시 유다로 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17 예수님께서 가서 보시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지 벌써 나흘이나 지나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33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다. 34 예수님께서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이 “주님, 와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36 그러자 유다인들이 “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하고 말하였다. 37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 하였다. 38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이 북받치시어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다. 39 예수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니,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였다. 40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41 그러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42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43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44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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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라자로와 마리아와 마르타. 예수님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이들입니다. 라자로가 병으로 고생할 때에 그 소식을 예수님께 알립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와 더불어 라자로 남매는 특별한 인물로 표현됩니다. 오늘 복음은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보여 줍니다. 이는 요한 복음의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표징으로, 예수님의 말씀은 부활의 의미를 미리 알려 주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무덤을 찾으셨을 때, 마르타는 죽은지 나흘이나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라자로의 죽음을 확증하여 그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다시 살리십니다. 복음은 이 표징을 통하여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이 표징은 종교 지도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마음먹는 계기도 됩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나타내는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신앙인에게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을 주는 것이며 우리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암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분으로 생명 그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그것을 보여 주는 사건이 라자로의 소생입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를 향하여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이처럼 요한 복음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도록 요청하면서 질문에 답하도록 초대합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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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누기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이야기 해봅시다.

2. “오늘 복음은 부활을 생각하게 합니다”에서 나는 육신의 부활을 온전히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살면서 어떤 경험으로 나자로와 같이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꼈었던 경험이 있었는지 그걸 주님이 어떻게 그 어려움에서 나오게 해주셨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3. 내가 어려움을 만날 때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음으로 인하여 행복함을 누리며 살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나는 어려움이 있을때 주님에게 의탁하며 지내는지 나의 힘으로 일을 풀어나아가려고 하는지 이야기 해보고 주님의 반응이 없을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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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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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살리시기 전에 마르타에게 물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생명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죽음과 가족들의 슬픔을 마주하면서 마음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눈물은 사랑의 눈물이며 인류의 고통과 아픔을 나누는 눈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심정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무덤 앞에서 “돌을 치워라.” 하고 소리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활의 은총을 받기 전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를 말합니다. 우리는 돌처럼 굳어 있는 마음을 부드럽게 해야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불신을 치우고 자녀다운 신뢰를 마음에 심어야 합니다. 사순 시기의 기도와 선행은 우리 마음의 돌을 치우는 노력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차디찬 마음을 따듯하게 하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하시는 예수님의 외침은 인류를 죄로 말미암은 죽음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르타처럼 믿음을 고백하면, 죽음의 어둠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죽음의 수렁 속에 허우적거리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