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0장 27-30절; 나는 내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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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나는 내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27-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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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성소는 ‘거룩한 부르심’이라는 뜻입니다. 이 성소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늘 사람들을 두 부류로 부르셨음을 알 수 있지요. 하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들 일상생활의 외적인 틀은 변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마르타, 라자로,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 같은 사람들이었지요. 그들은 주어진 자신들의 생활에 충실하면서도 예수님의 뜻과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이를 넓은 의미의 성소라 부릅니다.
또 하나는 자신들의 안정된 생활과 가족까지 다 버리고 완벽히 다른 생활을 택한 사람들이지요.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제자들입니다. 이를 좁은 의미의 성소라 부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 두 가지 길은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도 계속 이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첫째 부류는 평신도로서, 둘째 부류는 성직자, 수도자로서 저마다 고유한 역할을 맡은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뜻하는 성소는 좁은 의미의 성소를 말합니다. 특별히 사제직과 수도 생활로 부르심을 받는 것을 의미하지요. 따라서 성소 주일인 오늘은 사제직과 수도 생활에 투신하는 젊은이가 많아지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아울러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더욱 성화되도록 기도하고, 그들의 아픔과 고뇌를 이해하고, 또 함께 나누는 날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자신들의 성소를 더욱 잘 가꿔 나갈 수 있도록 따스한 사랑과 기도가 더 필요합니다.
(출저:https://maria.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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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나 단어를 이야기 해봅시다.

2. 신앙인으로서 내가 선택해서 이루어 내었다고 생각한 일들이 “아 주님의 부르심이였구나”라고 느낀 경험이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어떤 계기로 주님의 부르심으로 느끼게 되었는지 이야기 해보고 아직 느끼지 못하였다면 앞으로 주님의 부르심이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올지 상상해보며 이야기 해봅시다.

3. 우리는 사제직과 수도 생활에 투신하는 젊은이가 많아지도록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주위에 신학교를 간다는 친구가 있으면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해주는 사람은 많지만 과연 우리 자녀들이 사제직을 선택한다면, 주위에 가까운 가족이 사제직을 선택한다면 어떤 마음으로 자녀들이나 가족을 인도할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하기: 오늘 말씀(묵상/동영상)을 통해 내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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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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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이스라엘 땅은 농사보다는 목축에 적합합니다. 목자들은 양과 염소를 신선한 풀이 자라는 곳으로 이동시켜 배부르게 하고 목을 축이게 합니다. 그런데 양은 귀는 밝지만 눈은 그만큼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소리로 양을 이끕니다. 목자는 앞장서 가며 양을 목소리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목자의 목소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양들은 길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잘 구별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목자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왔을 때 늘 배부르고 안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들은 목자를 따를수록 더욱 목자의 목소리를 믿게 됩니다.
이는 아이가 어머니의 목소리를 금방 알아들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에게서 오는 그 사랑에 익숙해져 어머니의 목소리만 따르면 안전하다는 것을 압니다. 양들도 목자들이 자신들의 배를 곯게 하고 위험한 곳으로 인도한다면, 목자의 목소리에 대한 믿음을 잃고 더 이상 그 목소리를 신뢰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고 하시고,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양들은 이미 예수님께 길들여진 양들입니다. 그래서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입니다. 착한 목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오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 일들을 당신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양들은 착한 목자만 따릅니다. 교회의 목자들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그리스도를 닮아갈 때, 양들은 더더욱 교회 목자들의 목소리를 신뢰하고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