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복음5장17_37절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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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과 달리,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7-37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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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의롭게 살기 -유환민 신부-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시지요. 그런데 우리 인간은 하느님을 떠나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의 원천인 당신 곁에 머물도록 계명을 주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율법, 바로 계명에 대해 말하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 다.”(마태 5,20)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는 일주일에 두 번씩 단식하고 하 루에도 몇 번씩 때를 지켜 기도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이 정한 613가지의 세세한 규정들을 하나도 어기지 않으려 애쓰며 성실히 지켰습니다. 어떻게해야 그들보다 ‘더 의롭게’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겉으로 드러나는 율법 준수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일치하는 마음가짐까지 바라십니다.(보다 근본적인 것은 마음가짐이라 생각하셨지요.)

우리가 분노에 굴복해 폭력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려면, 겉으로 행사되는 폭력뿐 아니라 마음속 폭력까지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예 마음 안에 적개심이 자리 잡지 못하게 말입니다. 칼로 찌르는 것만 살 인이 아닙니다. 중상과 비방으로 타인의 인격을 훼손하고, 괴롭힘과 악플로 생기를 잃게 해서도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인격과 생명을 존중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 모든 게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인도 마다 않는 광기와 폭력, 드러나면 죄가 되고 드 러나지 않으면 능력이 되는 부조리한 현상에 개탄하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그런 불합리한 모습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끓어오르는 분노와 적개심을 법이라는 제도 뒤에 감추어 두는 것은 하늘나라에 초대된 제자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좀 억울해도 먼저 나서 용서하고 화해할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핵심인 참사랑입니다. 율법의 핵심은 사랑이기에 사랑을 외면한 계명, 사랑 없이 지키는 계명은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 없는 계명으로는 아무도 구원으로 이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에서 우러나 자발적으로 화해하고 절제하고 정직하 기란 그저 규칙을 따르는 것보다 대개 더 어렵습니다. 바보 취급받지 않으려면 일단 목소리를 높이고 봐야 하는 요즘엔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창조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를 살아낼 수 있습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집회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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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의로움 -임성만신부-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 금하신 것을 피하는 것, 명하신 것을 따르는 것,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 중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신앙생활인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하느님께서 금하신 것을 피하는 것에 대해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전문가로 보인다. 우선 그들은 율법을 613개의 조항으로 분류해 날마다 암기했다. 일주일에 이틀씩이나 금식하며 기도했고, 십일조도 정확하게 바쳤다. 안식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철저히 지키는 열심을 보였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사는 자신들은 언제나 하느님께 인정을 받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에 나가 기도드릴 때에도 자신들의 열심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종교적 공로 리스트’를 펼쳐내는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모습을 반어적으로 책망하셨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당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모든 율법을 문자로 해석해 이해하기에 급급했다. ‘살인하지 마라’는 계명은 단지 살인하지 않으면 그 계명을 지킨 것으로 생각했다. 왜 살인을 해서는 안 되는지, 하느님께서 생명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모든 계명 안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포함되어 있고, 그 자체가 복음적 메시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모든 계명과 율법은 단지 문자적인 측면으로만 해석되거나 외형적인 실천의 모습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예수께서는 율법을 지키되 먼저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을 먼저 실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마태 23,23) 이들이 겉으로 볼 때는 세밀하게 계명을 지킨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마태 23,5)”으로 하느님께서 원하는 진정한 율법의 정신에서 벗어난 위선적인 사람들이라는 말씀이다.

사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 의롭게 된다고 믿었다. 율법을 통해 의로움을 드러냈고 그것을 자랑했다. 이에 바오로 사도는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필리 3,5-6)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필리 3,7-8)라고 고백하며 자신이 가진 의로움은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진 것이며, 그 믿음으로 하느님께로부터 난 의로움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더 나은 의로움’이란 바리사이들이 결코 깨닫지 못했던 하느님의 구원 방식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만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열심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외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구원론적 사실을 믿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늘 보여주었던 ‘열심’뿐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를 믿고 그분이 드러내신 사랑을 우리가 행하고 그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예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이 없으면 율법도, 우리의 열심도 결코 빛을 발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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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이야기 해봅시다.

2. 율법을 지키며 사는 사람(유대인, 이슬람)들과,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죄를 지으며 사는 크리스챤(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만약 10계명 이외에 주님께서 다른 계명을(사랑 이외에) 더 만드셨다면 어떤것이 있을지 자유롭게 생각해봅시다.

3.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필리 3,7-8)”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쓰레기”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왜 우리는 이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될지 이야기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