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마태오 2장 1-12절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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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복음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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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의 빛이신 분의 탄생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마을인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이루어집니다. 메시아의 탄생을 그토록 기다렸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도 예수님의 탄생을 알아보지 못했고, 헤로데는 행여 자신의 권좌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예수님을 없애려고 모략을 쓰기까지 합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동방에서 별을 보고 먼 길을 찾아온 박사들의 모습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이 유다 민족을 넘어 온 인류에 펼쳐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인류가 겪고 있는 전쟁과 폭력, 살인과 죽음, 죄악과 고통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인류를 구원할 참된 빛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을 갈망하던 동방의 박사들은, 하늘의 별이 안내해 주는 표징을 따라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유다인들보다 먼저 들었고, 마침내 아기 예수님을 만나 경배하며 예물을 바치는 영광을 얻습니다. 그들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기쁨에 넘쳤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에도 별이 하나씩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불공평과 가난, 미움과 질투, 병과 죄의식 속에서도 여전히 내 영혼을 비추고, 세상의 어둠을 이겨 내는 빛나는 별을 갈망하며 삽니다. 그리스도교는 이 구원의 빛을 체험한 제자들이 성령의 계시를 통해 스스로 복음이 되고, 이 복음을 증언하는 이들이 한 지체가 되어 구원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확신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전통과 제도의 틀에 갇혀 성령의 인도로 일깨워지고 지탱되는 ‘신앙 감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세상 사람들과 무엇이 다를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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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이야기 해보거나 다음 관점에서 성경 말씀을 묵상해 봅시다.

     – 동방박사 입장에서

     – 율법 학자, 수석 사제 입장에서

     – 헤로데 입장에서

2. 주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우리는 이런 주님의 마음이 있는 곳을 어떻게 찾고 있는지, 어떻게 품고 사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예: 꿈, 예수님이 계신 곳, 구유, 빛, 마구간, 낮은곳, 사랑…)

3. 동방박사들은 경배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요 영광으로 여기며 예수님께 먼 길을 달려 왔습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무엇이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방해하고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하기: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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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주님 공현 대축일은 또 하나의 주님 성탄 대축일로 부를 만큼 중요한 축일입니다. 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는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듯이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을 공적으로 드러내 보이십니다. 구유에 누워 계신 연약한 아기 예수님께서, 동방 박사들로 표현된 이방 민족들에게 별의 인도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며, 구세주의 탄생을 공적으로 드러내 보이신 것입니다.

베들레헴의 작은 마구간에서 솟아오른 생명의 빛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지혜며, 세상을 구원하는 빛입니다. 이 빛을 보고 도착한 동방 박사들에게 연약한 인류의 구세주께서는 당신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동방 박사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셨듯이 우리에게도 당신을 드러내시어 ‘신앙의 여정’이라는 먼 길을 용기 있게 걸어가도록 초대하십니다. 동방 박사들이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 인류의 구세주께 경배를 드린 것처럼, 우리도 신앙의 빛을 따라 삶의 희망을 잃지 말고 참고 견디어 내며 지혜롭게 우리의 믿음을 키워 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신앙의 빛으로 우리 인간을 이끌어 주시고 온갖 위험에서 건져 주시며, 끝내 당신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신앙의 빛을 따라가는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구세주께서는 강생을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시고, 들어 높여진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겸손하고 가난하신 구세주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신앙의 빛 안에서 그분을 믿고 그분과 함께 걸으며, 그분께 의지하는 신앙인은 늘 기뻐하며 살아갑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