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마태오 22장, 34-40절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오늘의 묵상
그리스도인들이 초세기부터 지향한 완덕의 길은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어느 정도 세상에서 이탈하는 것을 뜻합니다. 도를 터득하려고 속세를 떠난다는 것은 거의 모든 종교가 가진 공통적인 방법론이고, 가톨릭 교회의 초기 수도자들이 택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경험을 거쳐, 진정한 완덕의 길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은 세상에서 이탈하는 것이 아니며, 세상을 사랑하는 것도 하느님에 대한 기도와 사랑이 전제되지 않으면 허울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아름답게 꾸며지는 ‘내면의 삶’도 하느님과 만남을 통해 그분께서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신 우리 이웃들과 만남으로써 이루어지고 완성됩니다. 그래서 내면의 삶은 바로 우리 외적인 인간관계들의 원천이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려고, 그리고 하느님만을 생각하려고, 잠시 이웃들과 떨어져 지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리듬이 있듯이, 우리의 신앙생활도 기도와 활동의 리듬 안에서 늘 하느님을 만나고 이웃을 만나는 삶입니다. 기도는 활동을 지향하고, 활동은 기도로 우리의 삶을 초대합니다. 이 두 가지의 조화 안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거룩해지며 완덕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주신 두 가지 계명은 우리 신앙인에게 가장 완벽한 계명이며, 가장 아름다운 조화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

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이야기 해봅시다.

2. 예수님은 바리사들의 도전을 사랑의 말씀을 전하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심하게 도전 받은 경험이 있었는지 이야기 해보고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기회로 만들 수 있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묵상해 봅시다.  신앙생활을 하며 형제/자매와 사랑을 주고 받으며 생활하고 있는지 이야기 해보고 아직 사랑을 주거나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방해하고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될지 이야기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