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우리에게 익숙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에 대한 복음을 오늘 다시 듣습니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구절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이 말씀에 대한 묵상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길을 보여 주신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서 ‘남은 조각’이라는 말과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는 말은 퍽 대조적으로 보입니다. ‘가득 차다’에서 파생된 명사 ‘충만’(pleroma)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신학생 시절 은사 신부님이 자주 강조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은총의 충만, 곧 차고 넘치는 은총 속에서 우리는 구원을 이 세상에서 미리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대개 ‘남은 조각’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 조각은 우리의 고통과 분열된 자아를 상징합니다. 하느님을 알아 뵙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식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조각이나 파편에서 시작하는 것, 이는 지상에서 지속되는 삶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른 서간에서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1코린 13,12) 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만나는 이는 거울에 비친 세상에서, 조각과 파편으로 다가오는 사건들에서 그것이 ‘가리키는’ 충만하고 완전한 구원을 예감합니다.
보잘것없는 남은 빵 조각이 주님께서 성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들에 대한 자비를 담아 친히 축복하신 구원의 양식을 반영하듯이, 조각나고 상처 받은 우리 각자의 삶은 주님께서 선사하신 충만한 구원을 비추어 줍니다. 남은 빵 조각이 광주리에 모였을 때, 그 빵 조각은 충만함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공동체 안에서도 부서진 각자의 삶이 만나고 모일 때 우리의 삶은 주님의 생명을 증언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주님의 구원 은총의 작지만 빛나는 표징임을 기억하고 확신하는 것, 바로 이것이 성체성사를 닮는 삶입니다. (출저:https://maria.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