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제1독서 <너는 분별력을 청하였다.>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3,5-6ㄱ.7-12 그 무렵 5 주님께서 한밤중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느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솔로몬이 대답하였다. 7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당신 종을 제 아버지 다윗을 이어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만,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8 당신 종은 당신께서 뽑으신 백성, 그 수가 너무 많아 셀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당신 백성 가운데에 있습니다. 9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10 솔로몬이 이렇게 청한 것이 주님 보시기에 좋았다.
11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곧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12 자,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너 같은 사람은 네 앞에도 없었고, 너 같은 사람은 네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8,28-30형제 여러분,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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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44-52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47 또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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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 말씀은 숨겨진 보물과 진주로 비유된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불필요한 것을 모두 버려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추구하려면 다른 무엇을 포기해야만 하지요. 세상 삶을 살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를 추구하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필요한 것을 모두 버리는 결단과 끝없는 노력만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이고, 무엇이 필요 없는 것인지를 식별하는 지혜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제1독서에 나옵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지혜를 얻으려면 무엇보다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말을 잘하려면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야고 1,19). 그러므로 제대로 말하려면 제대로 들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고요한 시간을 많이 가져야만 하지요.
고요한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면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나를 억압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지요. 그리고 나에게 하느님 나라가 왜 필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하늘 나라를 위해 불필요한 것을 자연스럽게 버리게 될 것이며, 참으로 투자할 곳에 투자하는 신앙인이 되어 갈 것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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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이야기 해보거나 다음 관점에서 성경 말씀을 묵상해 봅시다.
– 보물을 발견한 사람 입장에서
– 밭을 파는 사람 입장에서
2. 지나고 보니 불필요한 것에 집착했던 경험이나, 반대로 정말 소중한 것을 놓쳤던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봅시다.
3. 신앙생활을 하며 ‘아, 이것은 참 주님의 귀한 보물이구나’라고 느꼈던 경험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고 만약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면, 주님 안에서 보물을 발견한 다른 분들의 모습을 함께 나누어 봅시다.
4. 성당에서 많은 단체가 있습니다. 신심단체부터 부부모임 친목단체등 여러 중요한 모임이 있는데 어떤 모임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모임인지 하나를 선택해보고 이야기해 봅시다.
5. (결심) 나는 신앙의 보물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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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의 향기♣ No4661
7월26일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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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를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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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방송미사**
https://youtu.be/3Ih-z9yTNVc
[의정부교구 박규식 암브로시오 신부님 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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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추한 노인과 품격 있는 노인!>
젊은 시절 그런 기대를 참 많이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자유로워지고 부드러워지겠지. 노인이 되면 지혜로워지고 내려놓게 될거야.” 그런데 저 자신을 바라보고, 또 주변을 돌아보니, 그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공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소설가 현기영 님의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탐욕스러운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노련해지고 오만한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후안무치해진다. 젊은 날의 상처는 더욱 예민한 치부로 남아, 겹겹의 가시 울타리를 두른 채 윤색되고 포장된다. 연륜을 무기 삼아 삿되게 목청을 높이고, 권위를 지키려고 옹졸하고 편협해진다. 자신을 비우고 성찰하지 못하는 노년은 추하고 고독하다.”
반면 참으로 존경스러운 노인, 성숙의 극한에 도달한 노인의 모습을 우러러봅니다. 그들은 노화로 인해 다가오는 고통을 유심히 바라보고 성찰합니다. 그러나 너무 심각하게 응시하지도 않습니다.
깨달음에 도달했기에 내 것 네 것에 대한 경계가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높은 시련의 파도가 다가와도 놀라지 않습니다. 그저 허허로운 마음으로 달관한 미소로 넘깁니다. 세상 모든 만물이며 모든 인연이 다 소중하며 모든 것이 다 감사거리입니다.
오늘 조부모와 노인의 날입니다. 노년기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정표가 되어줄 모델을 꾸준히 찾아나가야 하겠습니다. 성경 속에 여러 모델이 등장합니다. 대표 인물이 시메온 예언자입니다.
그는 다른 무엇에 앞서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이 들어가면서, 육적인 삶을 줄이고 영적인 삶을 조금씩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그는 매일 같이 성전으로 출근했습니다. 루카 복음 사가에 따르면 그는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던”(루카 2,25) 사람이었습니다.
이토록 잘 준비된 영적 노인 시메온에게 마침내 주님께서 풍성한 은총을 선물로 주십니다. 평생토록 염원했던 소원, 지복직관의 은총, 메시아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두 팔에 안아보는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시메온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 2, 29-32)
바야흐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백세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80에 세상 뜨면 너무 빨리 가셨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길고 긴 노년기를 잘 보내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건강 관리도 잘 하고, 재정 관리도 튼튼히 해놓고, 즐기고 만끽할 취미활동도 준비하고…다른 무엇에 앞서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고 지혜롭고 충만한 노년을 살기 위해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되어 머리가 하얗게 세고, 기력도 떨어지고, 세상의 무대에서 점점 뒤로 물러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는 언제나 그러하셨듯이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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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인생 100% 성공하는 법>
저희 어머니는 제가 “이제 연세가 많이 드셨네?”라고 말하면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거야!” 라고 노랫말을 되풀이하십니다. 그러면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내가 다 늙었다!”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는, “내가 많이 익었지?”라는 말을 듣는 것이 더 좋습니다. 과일도 익은 것은 맛이 있지만 늙은 것은 먹을 수 없습니다. 인생의 성공도 이것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늙지 말고 익어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늙는 것과 익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은 옳은 것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세계 최고가 된 파타고니아의 성공 비결과 ‘이본 쉬나드’의 60년 경영 철학을 공개한 최초의 책입니다.
파타고니아는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의 교복이라고 불리는 ‘파타고니아 조끼’의 주인공이자,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품절 대란을 일으키는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 기업입니다.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의 인생 목표는 바로 ‘지구’입니다. 지구를 보존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는 그 사랑의 마음을 평생 키워왔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암벽 등반을 즐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그가 개척한 북한산 길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벽에 박아 놓은 피톤들을 잘 빼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피톤의 머리가 너무 쉽게 부러졌기 때문입니다.
“산에 갔을 때는 그곳에 갔던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철학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는 등반에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대장장이 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파타고니아입니다.
그는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란 캠페인을 했습니다.
고쳐서 쓰면 되지 뭐하러 새로 사느냐는 것입니다. 지나친 소비가 지구를 죽이고 있음을 알았기에, 자신의 제품부터 소비를 줄이라고 소비자들에게 호소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제품은 물론 타사의 제품까지 가져오면 다 수리를 해 주었습니다. 수리되지 않는 물품은 만들지 말자는 것이 그의 경영 철학 중 하나입니다.
그는 옷에 들어가는 소재인 면을 일반 목화로 쓰지 않고 유기농 목화를 쓴다고 합니다. 목화는 많은 농약을 주어야 하기에 땅을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농부와 결탁하여 훨씬 비싼 재료인 유기농만을 사용합니다. 그런데도 매해 꾸준한 성장률을 경신하며 전 세계에서 열광적인 팬을 거느리게 된 기업을 일구었습니다.
만약 이본 쉬나드가 돈을 버는 것에만 전념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는 늙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 안에 사랑의 씨앗을 키우는 것에 전념하였습니다. 그 씨앗을 키우면 성숙합니다. 사람은 성숙에 먼저 집중을 해야지 성공에 집중하면 안 됩니다. 성숙은 내면의 변화입니다. 성숙에 집중하면 성공을 하지 못하더라도 존경받는 모습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행복’입니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내가 일하고 있는 그 밭에 묻혀있습니다. 내가 어떠한 일을 하건 그 밭에 행복이 묻혀있습니다. 다만 행복은 행복을 찾는 이들에게만 보입니다. 그 가치를 아는 이들에게만 보입니다. 그래서 ‘밭에 묻힌 보물’ 다음 비유로 ‘값진 진주를 찾는 상인’의 비유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금은방을 하시는 한 자매님이 지인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지인은 인도 여행 중에 어떤 착한 사람에게 싼값으로 진주를 한 무더기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사를 할 때도 꼭 챙겨 다니며 10여 년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보석상을 하시는 분이 그것을 보고 “아니, 왜 가짜를 그렇게 열심히 들고 다녀요?”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결국, 그것들의 신세는 묵주 팔지 재료가 되었습니다.
진주도 양식보다는 자연산이 훨씬 비싸고, 양식도 민물양식과 해수양식이 있는데 바다에서 길러진 것이 더 비싸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그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이 상당히 다양하여 정말 비싼 진주의 가치는 그것에 관심이 있어서 많은 공부를 한 전문가만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밭에 보물이 있어도 그것만을 절대적으로 원하여 그것을 위해 철저히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그 보물을 발견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것을 원해야 인생의 성숙이 시작됩니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나의 성숙만을 바라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원하지만,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을 함께 초대하여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을 하였습니다. 이때 어떤 학생이 “그렇게 부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워런 버핏이 먼저 “인성입니다.”라고 대답했고, 빌 게이츠도 동의하였습니다.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인성의 성숙’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안에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고 그것들을 제거해 나가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늙으면 실패하는 것입니다. 익으면 성공한 것입니다. 인생 100% 성공하는 방법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기 위해 에너지를 쓰면 됩니다.
나의 밭에는 언제나 나의 인성을 성숙하게 만들 수 있는 보물이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나의 인성적 성숙을 얻기 위해 나의 모든 에너지를 그것에 쏟을 수 있다면 그 인생은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익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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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전주교구 백재욱 스테파노 신부님]
마태오 복음서 13장에서만 소개되는 보물과 진주 상인, 그물의 비유는 이야기의 소재는 다를지라도 모두 ‘하늘 나라’라는 공통 주제로 연결됩니다. 이 세 비유를 통하여 우리는 하늘 나라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하늘 나라는 숨겨져 있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보물, 진주, 물고기는 밖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많은 이가 그 곁을 스쳐 지나가거나 바라보지만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하늘 나라는 이처럼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이미’ 존재하지만(루카 17,21 참조),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에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부재’가 더 강하게 그 ‘존재’를 증명하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그것을 발견하는 이에게 주어집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려면 땅을 파는 노력이, 값진 진주를 얻으려면 열심히 찾아 다니는 고생이, 좋은 물고기를 잡으려면 그물을 바다에 던지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가만히 앉아서는 결코 그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늘 나라를 찾은 이는 기쁨을 얻습니다. 이 내용은 보물을 발견한 사람의 이야기에만 나오지만 다른 비유 이야기에도 분명 그러하였으리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늘 나라를 발견하고는 돌아가서 모든 것을 겁니다. 기쁨이 그토록 크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걸 만큼 무모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합니다. 그 나라는 예상하지 못한 때에 생각지도 않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때 곧바로 응답할 수 있도록 우리 몸과 마음을 잘 준비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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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마태 13,44-52: 하늘 나라에 대한 비유
1. 솔로몬의 지혜와 하늘 나라의 보물
솔로몬이 구한 것은 부도, 권력도 아닌 “듣는 마음”(1열왕 3,9)이었다. 이는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고 백성을 잘 이끌기 위한 지혜였다. 참된 지혜는 인간적인 유익이 아니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서 흘러나온다. 성 암브로시오는 말한다. “지혜는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오는 선물이다. 지혜가 없다면 재물과 권력은 무질서의 근원이 된다.”(De Officiis, I,26,121 의역) 하늘 나라는 바로 이 지혜와 연결된다. 곧, 하늘 나라는 단순히 죽은 뒤에 가는 장소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의 상태이며, 그 안에서 발견되는 “보화”이다.
2.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값진 진주
예수님은 하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이 기쁨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얻는 보물에 비유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제적 희생이 아니라, 기쁨에 넘친 결단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은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모든 것을 버린다. 진정으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이 버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얻은 보물만 바라본다.”(Homilia in Matthaeum 47,2 의역) 오늘날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신앙 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더 큰 보화를 얻기 위한 선택이다.
3. 하늘 나라의 제자: 옛것과 새것
예수님은 마지막에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마태 13,52)라고 말씀하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옛것은 율법과 예언자들이고, 새것은 복음이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빛을 주고받으며 하나로 완성된다.”(Quaestiones Evangeliorum I,14 의역) 교회는 바로 이 “옛것과 새것”을 보존하며 해석하는 공동체이다. 계시 헌장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구약과 신약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신약은 구약 안에 숨어 있고, 구약은 신약 안에서 드러난다.”(16항)
4. 복음적 결단과 제자의 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팔아 보물을 얻는 사람”은 제자의 삶을 상징한다. 성 베네딕토는 규칙서 첫머리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이는 아무것도 그분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Regula Benedicti, 4,21 의역)라고 권고한다. 하늘 나라를 얻는 길은 단순한 종교적 취향이 아니라, 삶 전체의 전환을 요구한다. 세상의 성공보다 하느님을 우선시해야 한다. 하찮은 것보다 영원한 것에 시간을 투자하자. 소유보다 존재, 집착보다 자유로움으로 나아가도록 하자.
5. 참된 지혜와 자유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 8,29)라고 한다. 참된 지혜란 바로 그리스도를 닮아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놓는 자유다. 성 이냐시오 로욜라는 영신 수련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드릴 수 있다면, 부든 가난이든, 건강이든 병이든, 장수든 단명이든,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구별하지 말고 오직 하느님의 뜻만 택하라.”(Exercitia spiritualia, 23 의역)
6.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기고 있는가?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옛것과 새것”을 함께 간직하며,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 하늘 나라는 단순한 미래의 보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기쁨의 현실이다. 우리도 밭에 묻힌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사람처럼, 기쁨에 넘쳐 모든 것을 내어놓을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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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하늘나라>
마태오 13,44-46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 그물의 비유, 비유를 끝맺는 말씀)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하늘나라>
하늘나라는
숨겨진
보물입니다
하늘나라는
보물을 찾는
사람입니다
하늘나라는
보물을 찾는
길입니다
하늘나라를
찾아
하늘나라인
사람이
걸으니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를
찾아
하늘나라를
걷는
사람이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인
사람인
하늘나라를
걸어
찾으니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찾아진
보물입니다
하늘나라는
보물을 품은
사람입니다
하늘나라는
보물을 나누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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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예전에 여름밤이면 텔레비전에서 ‘납량특집’을 방영했습니다. 무더운 여름밤, 무서운 이야기를 보면서 더위를 식히라는 뜻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납량특집으로는 ‘구미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때로는 아름답기도 한 이야기였습니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면서 어릴 때 읽었던 동화도 생각납니다. 그중 하나가 ‘금도끼와 은도끼’입니다.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그만 연못에 도끼를 빠뜨렸습니다. 가난한 나무꾼에게 도끼는 생계의 도구였습니다. 나무꾼이 상심하여 울고 있을 때 산신령이 나타나 은도끼를 보여 주며 묻습니다. “이것이 네 도끼냐?” 나무꾼은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산신령은 다시 금도끼를 보여 주며 묻습니다. “이것이 네 도끼냐?” 나무꾼은 다시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마침내 산신령이 쇠도끼를 보여 주자 나무꾼은 말합니다. “그것이 제 도끼입니다.” 산신령은 나무꾼의 정직함을 보고 쇠도끼뿐 아니라 은도끼와 금도끼도 함께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삶에서 진짜 보물은 금도끼도 아니고 은도끼도 아닙니다. 진짜 보물은 양심입니다. 진짜 보물은 정직입니다. 거짓과 욕심은 잠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양심과 정직은 사람을 빛나게 합니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도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마음이 착한 흥부는 어느 날 둥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보았습니다. 흥부는 제비를 불쌍히 여겼고, 정성껏 다리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이듬해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는 흥부에게 박씨 하나를 물어다 주었습니다. 흥부가 그 박씨를 심었더니 큰 박이 열렸고, 박을 타자 그 안에서 보물이 나왔습니다. 욕심 많은 놀부는 동생 흥부에게 그 사연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놀부는 흥부의 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놀부는 제비의 아픈 다리를 치료한 행동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치료해 주었습니다. 놀부도 박씨를 얻었지만, 그 박에서 나온 것은 복이 아니라 재앙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비 다리를 치료했다는 겉모습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흥부는 보상을 바라지 않고 불쌍한 생명을 돌보았습니다. 놀부는 보상을 바라며 선행을 흉내 냈습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마음이 달랐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겉모습만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솔로몬은 하느님께 특별한 은총을 청합니다. 솔로몬은 부귀영화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장수를 청하지도 않았습니다. 원수들의 죽음을 청하지도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청했습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의 청을 기쁘게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솔로몬이 청한 것은 바로 식별의 지혜였습니다. 식별의 지혜는 무엇이 더 이익인지 계산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식별의 지혜는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알아보는 마음입니다. 식별의 지혜는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참된지, 무엇이 영원한지 알아보는 눈입니다. 세상은 금도끼와 은도끼를 먼저 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흥부의 자비보다 놀부의 계산을 더 영리하다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는 다릅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양심을 선택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정직을 선택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자비를 선택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무엇이 더 귀한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았지만, 그는 잃은 것이 아니라 더 큰 것을 얻었습니다. 복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느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하느님 나라보다 더 앞세우지 않습니다. 재물도 필요합니다. 건강도 필요합니다. 명예도 필요합니다. 인간관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느님보다 앞서면 우리는 길을 잃습니다. 그것들이 복음보다 앞서면 우리는 양심을 잃습니다. 그것들이 사랑보다 앞서면 우리는 자비를 잃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에게 진짜 보물은 무엇이냐?”
오늘 시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저는 당신 계명을 금보다,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참된 신앙인은 하느님의 말씀을 금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순금보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오늘 제2독서에서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정직하게 살면 때로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자비를 베풀면 때로 이용당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양심을 지키면 세상에서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런 삶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양심을 지키는 사람의 삶 안에서 선을 이루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정직한 사람의 눈물을 기억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운 사람의 손길을 축복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청해야 할 은총은 솔로몬이 청했던 바로 그 은총입니다.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입니다. 금도끼와 은도끼 앞에서도 양심을 선택하는 지혜입니다. 제비를 이용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지혜입니다. 세상의 재물보다 하느님 나라를 더 귀하게 여기는 복음의 지혜입니다. 조부모님과 어르신들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그분들의 신앙과 희생을 감사히 기억하는 사랑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이 지혜를 간직한다면, 우리의 가정은 하느님 나라의 밭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본당은 숨겨진 보물을 함께 발견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서 선으로 이끄시는 은총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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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나의 소중한 보물 제1호>
학창 시절 소풍 때 보물찾기 생각 나는가? 선생님이 숨겨놓은 쪽지는 먼 데 있지 않았다. 돌 틈이나 나뭇가지에 있었고, 그냥 길바닥에 흘려놓은 것은 아닌 줄 알고 지나쳐 버렸다. 보물은 먼 데 있지 않았다. 그러나 볼 눈이 없었고 찾는 정성이 부족했다. 그래서 결국 상품도 받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이 무엇일까? 나는 기대하는 만큼 중하게 지키고 보호하고 간수하려 애쓰고 있는가?. 나의 보물 제1호는 무엇인가?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을 보면 무엇을 보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값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그보다 못한 것을 처분함은 당연하다. 큰 것을 위해 보다 작은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것도 큰 은총이다. 하늘을 희망하면서 세상을 꼭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부자 청년의 비유’ 이야기(마르10,17이하)를 보자.
예수님께서는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어떤 사람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결국 그는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면서도 자기의 소유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진정한 보물을 얻지 못하였다.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 양다리 걸치기, 어중간은 없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 라는 보물을 주셨다. 그 나라는 ‘우리 가운데’(루카17,21) 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묵시 21,3). 그러므로 진정한 보물을 아는 사람은 그만한 기쁨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보화가 있다.”(성 암브로시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둘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보물이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보물을 얻은 사람은 자기 자신이 또한 이웃의 보물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때때로 ‘손이 크다.’ ‘손버릇이 나쁘다.’ 라는 말을 쓴다. 그것은 마음이 그렇다는 얘기다. 아무리 고운 손이라도 나쁜 짓을 하는 손은 고운 손이 아니다. 아무리 거친 손이라도 선한 일을 하면 고운 손이 된다. 손의 주인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 감옥 갈 때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죄를 지은 마음은 손으로 가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 단속을 잘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천상에 두고 기쁘게 살아야 한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말한다. “무엇으로도 마음을 흩뜨리지 말며 무엇 때문에 놀라지도 마라. 모든 것은 지나가나 하느님은 변하지 않는다. 하느님을 차지한 자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 하느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이요, 모든 것을 얻고도 하느님을 차지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우리의 보물 1호가 되길 희망한다. 또한 이웃을 그분의 이름으로 사랑하길 바란다. 우리는 모두 이웃의 보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 나라의 보물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내 삶의 자리에 있고, 이웃 안에 있다. 보물을 잘 찾고 꼭 천상의 행복을 차지하시길 바란다. 또한 자신이 이웃의 소중한 보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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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자기계발서를 종종 읽습니다. 이 내용을 읽고 따르면 마음의 평화는 물론이고 돈도(재화도) 저절로 따라올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자기계발서가 넘쳐나는데 왜 불행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만 가는 것일까요? 올해 UN에서 발표한 ‘세계 행복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60위권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20위권이었는데 말입니다.
남들의 이야기는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의 이야기를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 안의 본질적 패턴, 맥락을 따르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고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빵의 기적을 행하시고 죽은 라자로를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똑같이 하라고 보여주신 것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할까요?
예전에 슈퍼맨 영화가 나오고 나서 망토를 목에 걸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야 인류의 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본질은 단순히 재미와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통해 본질적인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을 통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의 비유 말씀을 하십니다. 첫 번째는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입니다. 한 남자가 보물을 우연히 발견하지만, 그것이 숨겨진 밭은 그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그 보물이 묻힌 밭을 사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의 보물을 발견하면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밭을 갈거나 땅을 파는 등의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중에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예기치 않게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비유도 비슷합니다. 한 상인이 좋은 진주를 적극적으로 찾았고 이 진주를 발견하자마자 가진 모든 것을 처분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달리, 주님이라는 진주를 찾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그물의 비유입니다. 첫째와 둘째 비유가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지향해야 할 온전한 헌신과 투신이라는 이상을 말해 준다면, 이 세 번째 비유는 두 발을 현실의 땅에 굳게 디디도록 도와줍니다. 교회 안에 온갖 종류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인뿐만 아니라 죄인들도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를 분리해서 없애고자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적절한 때에 직접 하실 일이라고 하십니다.
본질적인 것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세상에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을 통해 보물과 값진 진주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선택으로 하느님 나라에서 참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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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마태 13,44-52)
1)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는 “전력을 다해서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여라.”라는 가르침입니다.
(1) 보물을 차지하려면 우선 먼저 보물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 눈앞에 있어도 그것이 보물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냥 지나칠 것입니다.
(2) 보물을 차지하려면 그 보물을 원해야 합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자기가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것’을 더 원할 때 그렇게 됩니다.
(3) 보물을 차지하려면 차지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경만 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4) ‘하느님 나라’ 라는 보물은, 혼자서 독점하는 보물이 아닙니다. 차지한다면, 또는 차지하기 전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차지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보물입니다. 지금까지 한 말을 실제 상황으로 바꿔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1)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선 먼저 하느님 나라가 인생의 궁극 목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그리고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만일에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허무한 인생을 살다가 허무하게 끝날 것입니다. 실제로, 내세, 하느님 나라, 구원,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현세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만이 최고인 줄로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 주어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2)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 나라에 들어가기만을 원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더라도, 그곳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지는 않고, 어떤 ‘깨달음’이나 ‘해탈’만을 원하는 경우가 있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가 아닌, 다른 이상한 곳을 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3)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자격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4) 하느님 나라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들어가서
‘함께’ 살아야 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선교활동은 모든 신앙인의 기본 사명입니다.
2) ‘보물의 비유’는 보물을 ‘우연히’ 발견했다는 이야기이고, ‘진주 상인의 비유’는 좋은 진주를 ‘열심히’ 찾아다녀서 발견했다는 이야기인데,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보물을 차지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숨겨져 있다는 말은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강조하는 표현일 뿐이고, 숨겨져 있다는 말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소수의 특정 인물에게만 은밀하게 전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은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과 같고, 좋은 진주를 찾다가 발견한 사람과도 같습니다.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이라는 말도 ‘기쁨’을 강조하는 표현일 뿐이고,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시작 단계일 뿐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만을 원하고, 들어가려고 전력을 다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희망이 빗나가면 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올바른 길을 선택했더라도 노력이 부족해서 끝까지 가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안 한 것과 다르지 않게 됩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루카 14,28-30) 신앙생활은, 글자 그대로 인생 전부를 걸고, 또 목숨을 걸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3) 밭에 숨겨진 보물이라고 표현하든지 좋은 진주라고 표현하든지 간에, 그 보물은 혼자 독차지해도 되는 보물이 아니고, 또 비싼 값으로 되팔 수 있는 보물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나누어야 하는 보물입니다. ‘하느님 나라’ 라는 보물은,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나눌수록 더욱 귀해지는 보물입니다. 그 나라는 모든 사람이 함께 들어가서, 함께 살아야 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자격 제한은 있어도 인원 제한은 없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함께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우리가 갖추어야 할 자격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자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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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박찬길 미카엘 신부님]
<사람, 하느님의 소중한 보물>
솔로몬은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열왕기 상권 3,5)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열왕기 사권 3,9) 하고 응답한다.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이란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는 지혜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제1독서를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어서 하느님의 지혜를 얻게 되면 나머지 것들은 그냥 덤으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참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보물에 비유하여, 이 보물을 찾은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서라도 그것을 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보물을 발견한 기쁨에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 그 보물을 소유하는 것, 이것이 하느님을 알게 된 신앙인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순교자들은 진정한 보물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버렸다. 하느님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전 재산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바쳐도 아깝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느님께 보물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인간이다. 인간은 실로 하느님께서 포기할 수 없는 놀라운 보물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위대한 보물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고 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얻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당신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을 내놓으셨다.
인간을 사기 위해서 그 아들마저도 아낌없이 파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하느님의 소중한 보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보물은 무엇일까? 무엇을 얻기 위해 우리의 삶을 희생하고 있는가? 우리가 잘못 선택한 보물들은 참 보물을 얻는 데 큰 방해가 될 수 있다. 열심히 수고하고 땀을 흘려서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해야 하지만, 그러나 진정한 보물은 하느님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느님만이 우리의 보물이요, 하느님의 나라만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얻어야 할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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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김학수 베드로 신부님]
<보물을 찾았나? 아니 아직!>
불충한 목자와 믿음 없는 양들(즈카르야서 13장, 에제키엘서 34장).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태오 5장 37절)
‘현실에 무감각한’ 무지가 “악의 평범성”을 초래한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교회, 사회에서 이웃에게 너무 쉽게 악을 범하면, 교회도 사회도 제대로 설 수 없고 쇄신할 수 없다.
신앙과 삶의 현장에서 좋은 진주를 발견하고도 욕심이나 교만 때문에 그것을 놓치고, 좋은 고기를 잡고도 잘못 골라내는 실수를 범한다. 선택과 결정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결과도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고” (다니엘서 13장 52절), “거짓말을 하며” (다니엘서 13장 59절)
독식의 욕심(열왕기 상권 21장, 다니엘서 13장, 마르코 14장 참조)을 갖는 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되면 그가 누구이든지 상관없이 뒷조사를 시켜 교구에 투서를 넣게 만드는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교회의 공동선이 아니라 사익을 추구하다 보니, 인재 양성과 노후대책을 소홀히 했다. 아직도 자리를 꿰차고 있다. 본인은 차르였지만 착한 목자라고 과대 포장했다. 부끄러운 일. 그것을 묵인한 우리는 비겁했다.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는 하늘 나라를 발견한 기쁨이 너무 커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사도 결코 아깝지 않다. 그만큼 하늘 나라는 그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신앙인의 자세이자 삶이다.
그물의 비유는 가라지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종말의 심판을 예고하기에, 하느님 백성인 그리스도인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하느님을 믿고 말씀과 가르침에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거스르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비뚤어진 생각과 간악한 마음”(지혜tj 1장 3절-4절)을 내려놓고, 사목은 열정적으로, 일은 공정하고 정의롭게, 재정은 투명하게, 사랑이신 주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복음화”를 이루며, 하느님 나라를 향해 성령과 함께 힘차게 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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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회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값진 보물>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건강, 가족, 재물, 명예, 권력, 목숨일까요? 목숨보다 더 가치 있는 절대 최고의 가치를 지닌 참된 보물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혹 목숨이 바로 그것을 위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정말 목숨을 바칠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세속적 가치’나 혹은 자신이 ‘가치 있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 ‘진정한 가치, 궁극적 가치’를 알았다 하더라도 목숨을 바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알아챈 ‘자기 자신’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과 ‘자애심’ 혹은 자기 중심성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에고’(자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를 진지하게 마주하게 해 줍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줍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는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어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2열왕 3,5) 하고 묻자, 솔로몬이 대답합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1열왕 3,9)
솔로몬은 백성을 분별 있게 통치할 ‘듣는 마음’을 청합니다. 여기서 ‘듣다’(샤마)라는 동사는 단순히 듣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을 받아들여 수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듣는 마음’에서 지혜가 옵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로마 829)을 밝히면서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 8,29)
그러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모상’이 되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로 비유됩니다.(짧은 복음만 보겠습니다.) 복음에서 먼저 알 수 있는 것은 ‘값진 보물’인 ‘하늘 나라’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일까요? 왜 하느님께서는 그 값진 보물을 숨겨놓으시고 우리에게 보물찾기를 요청할까요? ‘하늘 나라’는 ‘신비’인지라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신비’(mysteria)라는 말이 ‘닫다’, ‘가두다’라는 뜻을 담고 있듯이, 언젠가는 열려지는 ‘때’(종말)가 있을 것을 암시해줍니다.
곧 때가 아니라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곧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요청은 아닐까요? 그러나 그것이 비록 숨겨져 있으나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는 알려주십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마태 13,44)
그러니 ‘보물’은 멀리 하늘 위에 높이 매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땅,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 우리의 일터인 가정에, 공동체에, 직장에, 이 세상이라는 ‘밭’에 묻혀 있습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제1독서에서 말하는 ‘듣는 마음’ 안에, 제2독서에서 말하는 ‘당신 아들의 모상’인 우리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 17,21)
그렇지만 그 보물은 누구나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밭’을 충실히 일구고 가꾸는 자, 장사꾼처럼 찾아다녀는 자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마태 13,45)
그러니 그것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에, 곧 ‘찾아다니는 행동 안에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길을 찾는 발길 그 안에’, ‘진리를 더듬는 손길 그 안에’, 곧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신앙의 행위 그 안에’, ‘신앙의 여정 그 안에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하고 찾았다고 해서, 그것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하늘 나라를 어떻게 해야 얻을 수가 있을까? 오늘 복음의 두 비유에는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마태 13,44.46)
이는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가진 것을 다 파는 일’과 그 값진 것을 ‘사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 나아가서 자신마저도 팔아야 하는 이 일이 쉽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한 애착’과 ‘자애심’과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에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파는 일’이 아니라 ‘사는 일’이 본질임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더 값진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보물의 가치를 진정으로 깨닫는 일’ 입니다. 그것이 ‘에고’를 벗어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요한묵시록>에서 말하는 ‘돈 없이 사는’(묵시 21,6 참조) 일이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보물’이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차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하늘 나라가 ‘먼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루카 17,21 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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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 · 샘 기도>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태 13,47)
주님!
당신께서는 생명의 바다에 저를 가두셨습니다.
당신 사랑 속을 헤엄쳐 다니게 하시고, 사랑에 젖게 하셨습니다.
저를 살리시고, 당신 그물에 들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그물이 되게 하소서.
생명과 사랑의 그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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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고난수도회 김준수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인간의 내면 생태계는 단일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욕구와 의도 등 각기 다른 것들이 함께 공존하니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호 모순된 감정 때문에 마음이 찢기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헤어나지 못한 때도 있고,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어.’라고 탄식을 쏟아 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누군가를 향한 우리의 내적 궤적은 한 시기나 단계로 나아가는 단선적 발달이 아니라 끝없이 돌고 도는 나선적 발달 과정입니다. 나란 존재가 변하지 않았을 터이지만,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앎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뚜렷하게 깊어져 왔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은 끊임없이 부단하게 나의 내면을 보려는(=시각, 관점) 행위에 매달린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기에, 자기 내면을 직시하려는 행위를 어떤 이는 마음 오디세이아라고 표현하더군요.
몇 년 전에 저는 중국 실크로드 여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짧은 여행이든 긴 여행이든, 도시든 사막이든 여행하고 돌아오면 생각이나 느낌이 참 많아집니다. 예전 베트남에서 되돌아왔을 때도, 다른 내적 갈등과 심각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관구 봉사자 소임을 끝내고 안식년 1년, 안성 성요셉 병원에서 원목으로 3년 그리고 베트남에서 3년간 생활하면서 무려 7년 동안 공동체 외부에서 생활하고 공동체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빠르게 변한 것처럼 수도 생활도 참으로 빨리 변했더군요. 그때 저는 변화된 현실의 높은 장벽에 갇힌 듯싶었고,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어 갇힌 듯 답답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오늘 복음의 좋은 진주를 찾은 상인이 부럽게 느껴졌었습니다. 보물과 진주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처분하고 과감하게 자신이 찾은 것에 몰입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부러웠습니다. 그 까닭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는 저 자신이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분명 좋은 진주, 곧 하늘나라와 그 가치를 살고자 하는 열망이,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식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오늘 복음은 저에게 좋은 진주를 찾을 곳이 어디인지 묻지 않고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찾도록 저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어제 찾은 것에 집착하지 않고 어제와 다른 더 좋은 진주를 찾고 발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도록 호출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고 발견한다면 더 이상 미련이나 후회하지 않고 과감히 가진 것을 다 처분해서 사도록 촉구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습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13, 44~46) 오늘 말씀은 하느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를 가르쳐 주는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를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물을 우연히 발견하든 또는 진주를 애써 찾다가 얻었든 귀중한 것을 발견한 이들은 한결같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구매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보물이나 진주가 자신들이 소유한 것을 다 처분해서 매입해야 할 만큼 투자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처분함으로써 여러 가지 불편하고 어려운 점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자신들이 찾기 원하던 귀한 것을 획득했다는 기쁨이 더 컸기에 그런 결단을 내린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그 귀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겐 별로 소중하거나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나라는 마치 보물과 진주를 발견하고 귀하게 여겼기에, 모든 것을 다 매각하고 구매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늘나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하늘나라를 발견했을 때, 발견하고 찾은 기쁨이 너무 행복했기에 기꺼이 자신의 전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사는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물과 진주를 발견하고 그것을 구매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이 바로 하늘나라의 놀라운 가치를 찾아 얻은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가치에 압도되어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과 그 사랑에 적합한 삶을 살아가고자 전 존재를 바쳐 투신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외칩니다.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고귀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필 3, 8)
전 성격적으로 민물낚시든 바다낚시든 상관없이 낚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낚시하러 갔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물을 쳐 본 적은 한 차례도 없을뿐더러, 어떻게 그물을 던질지도 모릅니다. 베트남에 살 때 무이네 바닷가에 가서 어부들이 그물로 고기를 잡는 광경을 가끔 보긴 하였습니다. 무이네 어부들은 통버이라는 대나무로 엮어 만든 바구니 배로, 연안으로부터 수백 미터 이상을 나아가 물고기와 게나 새우 등을 잡기 위해 그물을 던집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에 떠 있는 수많은 통버이의 모습은 아침 햇살과 더불어 참으로 볼만한 장관입니다. 물고기를 잡은 통버이를 여러 사람이 합심해서 모래밭으로 끌어올리고, 그런 다음 가족들이 함께 잡은 물고기나 다른 것들을 선별하고 분류해서 팝니다. 아직도 그때 보았던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13,47)라고 예수님께서는 표현하십니다. 하늘나라가 그물과 같다고 하니 여러분들은 이해되시고 깨달으셨습니까?(13, 51참조) 어쩌면 그물의 비유를 깨달을 때야 비로소 하늘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가 되고,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13,52참조) 잘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첫 제자들인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4, 19)하고 부르셨으며, 그러자 그들은 즉각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하늘나라란 고기를 잡는 그물질과 유사합니다. 바다는 마치 세상과 같은 개념이며, 이 바다에는 하느님이 누구신지 아는 사람도 그리고 아직 하느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도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도, 희망으로 넘친 사람도 절망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봅니다. 그런 바다는 때론 잔잔할 때도 있고 엄청난 파도가 밀려올 때도 있으리라 상상해 봅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의 그물질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일단 세상이란 바다에 그물을 던져 그물에 잡힌 고기를 모래사장, 교회에 끌어올릴 것입니다. 그 그물 안에는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죄인도 의인도 함께 걸려드리라 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던진 그물에는 흡사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마태 5,45)듯이 모든 종류의 고기들이 그물에 걸려 올라오리라 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물을 쳐서 잡아 올린 고기들을 뭍의 모래밭으로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크고 좋은 고기들은 그릇에 담고 작고 나쁜 고기들은 밖으로 던져 버리는 일은 교회의 지체들인 우리들의 일이라고 봅니다. 교회 안에 다양한 소임과 직책이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다 함께 사람 낚는 어부들입니다. 좋은 고기인지 나쁜 고기인지 선별하는 식별 작업을 위해 교회 공동체 지체인 우리는 영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식별력은 우리 시대에 정말 중요하고 막중한 능력이며 책무이기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오늘 독서의 솔로몬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과 선과 악을 지혜롭게 분별할 수 있는 마음”(1열3, 9)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진정 하늘나라의 곳간지기는 머리를 잘 굴릴 수 있는 능력이 아니고, 마음을 잘 쓸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며 이런 사람은 어느 때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어떤 문제를 만나든 늘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아닌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시선에서 문제를 바라보기에 적절한 지혜로 대처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닫힌 마음이 아니라 마음이 열려있고, 더욱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우선으로 고려하기에 누구에게 상처를 주거나 누구를 희생하는 편협된 지혜가 아닐 것입니다. 이 지혜는 타인의 행복을 우선으로 배려하는 마음이기에, 타인을 자유롭게 그리고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나라의 곳간지기는 언제나 현명한 솔로몬처럼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 하느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의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성령의 이끄심에 민감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나이다.” (화답송 후렴)
*오늘은 본디 성 요아킴과 안나의 축일입니다. 또한 이 축일에 가까운 주일인 오늘 주일은 조부모와 노인의 날이기도 합니다. 축일을 맞는 분들과 모든 조부모들에게도 축하 인사 올립니다. 다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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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방종우 야고보(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신부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예전의 저의 학생이었던 시절 생각이 많이 납니다. 열의를 갖고 수업에 임하는 학생이든, 간혹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조는 학생이든 지난 저의 모습만 같아서 자꾸 웃음이 납니다.
특별히 잔뜩 긴장하고 눈을 반짝이며 시험을 치루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신학생 시절, 미리미리 예습하고 복습하며 시험을 준비하는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무엇이든 미리미리 준비한다는 것, 특히나 학업과 같은 지루한 과정을 준비한다는 것은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신학생들 사이에서는 “시험 때에 신학생들이 기도하는 방식”이 우스갯 소리로 전해지는데, 오늘 이것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신학생들은 평소에 물론 수업을 성실히 듣지만 그것을 매일매일 암기하고 복습하기란, 과목도 과제도 많고 할 일도 많아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험은 학기 마지막의 과정이므로 아직 멀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학기말 시험이 다가옵니다.
대부분의 시험이 서술형이기에 공부하기 위한 양이 적지 않은데, 시험 기간동안 책을 쌓아두고 신학생들은, “주님,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당연히 예수님은 이러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고 결국 시험 날이 다가옵니다.
교수 신부님들께서는 시험 당일, 강의실에 서술형 문제를 칠판에 적으시는데, 그 문제는 역시나, 제가 공부를 소홀히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적으시는 교수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시험이 끝나면 여름 방학 기간 동안 성적표가 우편으로 배송되는데, 점수를 보면서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이러한 이야기는 벼락치기를 하는 신학생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우스갯소리이지만, 사실 아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러한 비슷한 후회를 우리 역시 생각보다 자주 일상생활 속에서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서둘렀으면 미사에 늦지 않았을 텐데”, “조금만 더 빨리 준비했으면 버스를 놓치지 않았을 텐데”,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지금보다 좋은 결과가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일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첫 번째는, 밭에 숨겨진 보물을 찾은 사람이 그것을 다시 숨겨두고는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값진 진주를 발견한 상인이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해 그것을 샀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의 비유는 어부들이 그물로 물고기를 낚으면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예시에 등장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본인의 모든 것을 다 처분하여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구입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밭에 숨겨진 보물이, 혹은 값진 진주가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할 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미리미리 준비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이들은 결국 세상의 종말에 좋은 물고기가 되어 하늘나라에 남게 될 것이라는 것이 오늘 비유의 결론입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우리에게 이런 것이어야 합니다.
그 진가를 알고 있는 우리이기에 더욱 간절해야 하고 설레고 소중한 마음을 안고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곳에 이르지 못할까 걱정하고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며 하루하루 다가가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에 따르면 이 하늘나라는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만큼 가치 있는 곳이며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종종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을 갈망하곤 합니다. 재물, 학벌, 건강, 사랑 등 언젠가 끝이 있는 것에 지나치게 집중하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끝없이 존재하는 영원의 나라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내어 놓고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 모든 집중을 기울여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우리가 가진 것 중 무엇을 내놓아야 할지 고민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 다소 이기적인 마음,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욕심, 하느님께 다가는 데에 있어서의 나태함, 하느님께 대한 원망 등등 우리가 하늘나라를 위해 내놓아야 할 것은 충분히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나라를 원하고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바라는 학생처럼 때로 크게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쉽게 좋은 결과를 취득하길 바라곤합니다. 하지만 커다란 노력 없이 좋은 결과가 주어지지 않음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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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전교수도회 김종오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마태오.13,44)
하늘나라의 보물처럼 수도자로서의 성소를 발견하였던 때는 내 나이 스물 셋 즈음, 육군 중위로 근무하면서 비인격적으로 나를 대하였던 상관을 보며 분노와 좌절감을 느끼면서 새롭게 그 보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상관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어릴 적부터 의무적으로 드렸던 기도는 그때부터 더 이상 의무가 아닌 자발적이고 기쁨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기도로써 일치를 이루고 있던 순간들은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나의 시간이었고, 기도를 드리며 주님과 함께 하며 느꼈던 행복한 순간들은 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하늘나라처럼 느껴졌습니다.
성경 말씀은 내 안에서 살아 숨 쉬며 행복감을 주었고, 비인간적인 상관에게 느꼈던 분노와 좌절감은 그 후 더 이상 상처가 아니라 복된 아픔으로 변화되면서 ‘이제 나의 생을 주님께 봉헌하겠다.’는 봉헌기도를 온 마음으로 바치게 되었습니다.
주님만 믿고 따르며 봉사하는 삶의 행복을 맛보면서, 군인의 길도 나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었고, 군인으로서 해야 할 나머지 의무 복무 기간도 신학교에 가기 위한 기도와 공부를 준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 후 남은 약 3년의 의무복무기간은 군인으로서 주님 안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고, 미사 시간과 기도 시간은 무엇보다 기다려졌으며, 군대 생활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후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즐거운 날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만을 믿으며 주님과 함께 주님의 일을 하며 산다는 행복과 기쁨인 ‘밭에 숨겨진 보물’을 보았기에 군대를 전역하고 ‘가진 것을 다 팔아’ 1987년 ‘예수성심전교수도회’를 하여 그 밭을 샀습니다.
한 생을 살아오며 지금 우리가 머물러 있는 곳은 부르심을 받아 ‘가진 것을 다 팔아’ 산 밭입니다. 그 밭에 숨겨진 보물이 우리 삶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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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마태 13,49ㄱ)
<지금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
오늘 복음(마태13,44-52)은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와 그물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 우리의 여정은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이 여정을 향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곳으로 더욱 더 가까이 나아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곳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예수님은 값진 보물이요 진주이십니다. 때문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오늘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았는가? 살지 않았는가?’가 세상 종말의 때에 심판의 기준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코헬렛 저자로 알려진 솔로몬, 모든 부귀와 영예와 영광을 다 누린 솔로몬이 ‘태양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은 허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외침의 결론은 ‘지금의 행복과 하느님의 경외’입니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 1,2)
“자기의 노고로 먹고 마시며 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좋은 것은 없다. 이 또한 하느님의 손에서 오는 것임을 나는 보았다.”(코헬 2,24)
“마지막으로 결론을 들어 보자.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코헬 12,13)
“하느님께서는 좋든 나쁘든 감추어진 온갖 것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 심판하신다.”(코헬 12,14)
7월 26일인 오늘은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입니다.
그리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인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를 기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영명축일을 맞이한 분들께 먼저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은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2021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정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특히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참으로 허무한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죽어갔습니다. 솔로몬이 외친 허무와 솔로몬이 주님께 청한 지혜를 떠올리게 합니다.
오늘 제1독서(1열왕 3,,5-6ㄱ.7-12)를 보면, 주님께서 한밤중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1열왕 3,5) 하고 믈으셨을 때, 솔로몬은 장수와 부와 목숨이 아닌 ‘지혜와 분별하는 마음’을 청했습니다. “그러니 당신 종예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1열왕 3,9)
코로나는 인류에게 내린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바른 길을 걸어가야 할 때라는 강한 메시지와 강한 경고를 우리에게 던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현실, 죽음의 현실 앞에서, 더 가지고 못 가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 높고 낮음과 싸움에서 이기고 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기쁨과 슬픔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코헬렛의 저자인 솔로몬이 외치고 있는 것처럼, 모두 다 허무한 일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코헬렛 저자인 솔로몬은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행복’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하느님을 경외함으로부터 온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싸우지 말고, 너와 나를 가르지 말고, 하느님께서 주신 현실과 성소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지금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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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07.26.연중 제17주일.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물이라 여기며
살고 있는지요?
보물을 깨달은 사람은
그 길 자체가 보물임을 압니다.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입니다.
영원한 보물을 발견하는
발견의 기쁨입니다.
보물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보물을 받아들일
빈자리가 필요합니다.
사랑과 하느님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