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13장 1-23절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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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짧은 버전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9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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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버전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23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18 그러니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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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익숙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내용에 씨 뿌리는 사람은 한번 밖에 언급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씨나 씨가 뿌려진 땅에 관한 비유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씨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 당신이십니다. 비유의 시작에 표현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씨, 곧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우리에게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셨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입니다. 씨가 다양한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말씀은 다양한 우리에게 씨처럼 뿌려집니다. 말씀을 선포하고 전하는 것은 예수님의 몫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잘 자라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과연 ‘나’는 어떤 땅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통하여 씨는 이미 우리 안에 뿌려졌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씨를 품고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하는 것은 땅의 역할이고, 좋은 땅은 몇 배의 열매를 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결과를 가져옵니다. 씨가 열매를 맺듯, 우리 안에 뿌려진 하느님의 말씀도 우리를 통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기가 언제나 유쾌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고 실천함으로써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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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이야기 해봅시다.

2. 신앙생활을 하며 어떤 모습이 씨가 해에 탄 모습인지,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모습인지, 숨이 막혀 죽은 모습인지, 좋은 땅에서 열매를 맺은 모습인지 묵상해 봅시다. 현재 나의 씨는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이야기 해보고 신앙의 씨가 자리에 잘 잡히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이야기 해봅시다.

3.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결과”를 체험한 경험이 있는지, 주위에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묵상해 봅시다. 무엇이 선한 영향력을 가로막고 있는지 이야기 해보고 우리 단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선한 영향력이 “상상하기 힘든 결과”를 만들어 낼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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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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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이지요. 예수님 당시 팔레스티나 지방에서는 대체로 두 가지 방법으로 씨를 뿌렸다고 합니다.
첫째는 농부가 직접 밭에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또한, 노새를 이용해 씨를 뿌리기도 했습니다. 씨앗이 담긴 자루를 노새의 등에 얹고, 그 자루 한 귀퉁이를 조금 찢어 구멍을 냅니다. 그러면 노새가 밭을 걸어가는 동안 씨가 저절로 자루 속에서 흘러나와, 밭에 뿌려지게 되지요.
따라서 씨앗이 떨어진 곳에 따라 결실이 다르듯이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따라 말씀이 맺는 열매는 천차만별이라 하겠습니다.
먼저 길에 떨어진 씨앗은 뿌리를 내릴 수 없지요. 따라서 길과 같은 마음은 편견이나 선입관을 갖고 남을 대하는 이들이라 하겠습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은 쉽게 달궈졌다가 쉽게 식는 마음입니다.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무엇을 계획한 뒤, 어떤 위기가 찾아오면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열정을 다해 하느님의 길을 걷다가도 시련이 닥치면 이내 하느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은 세상 여러 일에 너무 많은 관심을 두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은 실천하는 신앙인을 뜻합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늘 마음을 여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깊게 생각하게 됩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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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비극과 의지를 노래하다가 옥사한 시인 이육사의 명시 ‘광야’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시인이기도 한 교사가 오랫동안 어린 학생들과 함께한 문학 수업 시간에 느낀 것을 전하는 책을 읽었는데, 이 시구에 관하여 토론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인지 오늘 복음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으며 문득 이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 시를 가르치며 일제 암흑기라는 시대적 배경과 이육사 시인의 고귀한 삶을 하나하나 설명합니다. 그는 이육사 시인에 대하여 ‘스스로의 삶을 씨앗으로 뿌린 이’였고, 자신의 삶 자체를 뒤에 올 이들을 위한 헌신이자 투신으로서 마흔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다고 알려 줍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너희도 이렇게 씨앗을 뿌릴 수 있겠니?”
이에 대한 한 학생의 솔직한 반응이 흥미 있는 토론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됩니다. “대뜸 은수가 ‘저는 안 뿌릴 거예요.’ 한다. 툭 던지듯 목소리도 컸다. 그 도발적인 대답에 내 마음이 출렁했다. 씨앗을 ‘못’ 뿌리겠다는 마음은 이해가 되는데 ‘안’ 뿌리겠다고? 그것을 이리 당당하게 말한단 말이지? ‘씨앗을 안 뿌리겠다는 말은 용기가 없어서 못 뿌리는 것이 아니라 뿌릴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말이네?’ ‘내가 열매를 다 먹지도 못하는데 뭐하러 뿌려요?’ ‘흠, 그래? 그럼 네가 지금 따 먹고 있는 열매들은 다 네가 뿌린 씨앗이니?’ 아이는 순간 멈칫한다.”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한 아이들은 다행히 이어지는 토론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좋은 일, 올바른 일, 가치 있는 일의 씨를 뿌리는 것이 얼마나 귀한 삶인지를 조금씩 발견하고 인정해 갑니다. 교사인 저자도 아이들과 가진 이 대화 뒤 이러한 확신을 더해 갑니다.
조향미 시인의 『시인의 교실』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의 씨앗이 떨어져 풍성한 열매를 맺는 비옥한 마음에 대하여 이렇게 새로이 깨닫습니다. 바로 자신의 이익과 안락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육사 시인이 그러했듯 다른 이들과 앞날을 위하여 묵묵히 ‘씨 뿌리는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출저:https://maria.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