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11장 2-11절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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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2-11

그때에 2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7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10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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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감옥에 갇혀 있는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 질문합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아마도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요한은 자신이 기대하던 메시아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요한은 왜 이런 의문을 품은 것입니까?
요한은 광야에서 주님의 심판이 임박했으니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정의만을 외치다 보니, 하느님을 벌을 내리고 심판하시는 무서운 분으로 만들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시며 어느 누구와도 친교를 나누셨습니다. 죄인들과도 어울리다 보니 이런 비난마저 받으셨지요.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루카 5,33).

이처럼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무서워하거나, 죄를 지은 나머지 스스로 하느님께 버림받았다고 절망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을 되돌려 주십니다. “눈먼 이들이 보고 ……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이렇게 결론을 내리십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이 말씀대로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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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이야기를 해봅시다.

2. “요한은 자신이 기대하던 메시아와 다르다는 생각”에서 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흔들린 경험이 있었는지 묵상해 봅시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왜 흔들렸는지 이야기 해보고 앞으로 예수님에 대한 나의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3. 현재 나는 내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께서 나의 삶의 의미가 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예수님이 나의 삶의 의미가 되는 모습에는 어떤것이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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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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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언제나 기쁨을 주시고자 하신다고 합니다. 삶에서 마주하는 많은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언제나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광야는 비옥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자라나지 않는 슬픈 땅입니다. 그러한 광야도 기뻐하라고 초대를 받습니다. 기쁨은 인간의 긍정적인 변화를 통하여 주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시고 기뻐하라고 초대하시며 참된 기쁨에 도달할 수 있는 수단을 주십니다.제2독서에서는 언제나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인내의 필요성에 대하여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여러 번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오시지만, 결정적으로는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큰 희망을 품고 주님의 재림을 기쁜 마음으로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복음은 기쁨에 대하여 명백하게 말하지 않지만,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묻는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이사야가 전한 표징들이 지금 실현되고 있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사야의 예언에서 완성되지 못한 표징을 제시하십니다.“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복음은 바로 가난한 이들, 곧 기쁨과는 거리가 먼 이들에게 전해집니다. 주님께서는 군중이 요한의 역할을 깨닫기를 바라십니다. 요한은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고 그분이 전한 메시지와 그분의 인격에 충실하도록 준비하기 위하여 하느님에게서 파견된 표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마지막 예언자이고,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드님, 구원자, 참된 메시아의 길을 직접 준비한 가장 위대한 예언자입니다.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큽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