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10장 37-42장 8절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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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37-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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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언자의 참본분은 사람들에게 하느님 뜻을 분명하게 전해 주는 것이었지요. 예언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 회개를 통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그렇지만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것이 많기만 합니다. 가족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기에 예수님께서 오늘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가족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이라도 하지 않습니까? 가족에 대한 희생과 사랑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도 되었지요. 반면 가족에 대한 집착이 혈연, 지연이라는 폐해마저 가져왔습니다.


편협한 인간관계를 초래하기도 하였지요. 따라서 오늘 예수님 말씀은 가족 관계보다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라는 말씀입니다. 참된 인간이 되어야 참된 가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오늘날 참된 인간상이 절실하기만 합니다. 이를 위해 내가 대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만남을 통해 상대방이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하느님의 본성을 본인이 발견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노력이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아닙니까?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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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이야기를 해봅시다.

2. 우리가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나만의 십자가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 내 자신이, 우리 공동체가, 지어야 할 십자가(순교/희생/봉사)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아직 많이 못하고 있다면 어떤 십자가를 지으며 신앙생활을 하고싶은지 이야기 해봅시다.

3. “가족 관계보다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라는 말씀”에서 나는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지 묵상해 봅시다. 무엇이 가족 관계를 늘 우선으로 생각하게 만드는지 이야기 해보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우선시 하는 사람의 모습을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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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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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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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후배 신학생들이 한국 식료품을 소포로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묵상은 후배들에게 쓴 제 답장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저는 그대들이 참으로 어리석은 이들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곳에서도 한국 식료품을 살 수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기어이 소포를 보내고야 마는 그대들은 어리석습니다. 12시간 넘게 걸리는 이곳에 소포를 보내면 고추장 용기가 깨질 수 있다는 사실보다, 이 사람이 고추장 한 숟가락 먹지 못할까 걱정하는 그대들은 어리석습니다. 시험, 논문 등으로 바쁜 시기인데 귀한 시간 쪼개서 보답도 없는 소포를 보내는 그대들은 어리석습니다. 세상은 그대들처럼 그리 어리석지 않습니다. 받을 것 다 받고, 자기 앞가림부터 챙기고, 손익 계산에 재빨라야 살 만하다는 것을 그대들처럼 모르지 않습니다.
그대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저는 어리석은 또 다른 사람들을 기억하였습니다.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을 어린 사제에게 털어놓았던 교우분들, 타지에서 고생한다며 봉투를 쥐어 주시던 선배 신부님들, 세상 좋은 것들을 마다하고 울타리 속에서 기도와 노동으로 살겠다고 세속의 옷을 벗은 젊은 처자들 ……. 프란치스코 성인도 그렇게 어리석어 한평생 거지로 살았고, 가타리나 성녀도 긴 머리를 잘랐으며,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도 자신의 젊은 생명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는 죄없이 고통을 받고 돌아가시면서도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을 용서하시는 어리석음의 극치를 달리시고야 말았습니다. 어리석은 이들이여, 그대들의 어리석음이 하느님께 큰 찬양이 되었으리라,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될 것이라, 그대 자신들을 살릴 것이라 믿습니다. 어리석은 그대들에게 제 어리석은 사랑을 고백합니다. 사랑합니다. 함께 갑시다.”
(한재호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