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6장, 1-6절;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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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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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모든 순간이 행복으로 가득 차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의 삶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갑니다. 그것은 아마도 대부분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다가도 다른 이들이 가진 것과 비교하기 시작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행복이 불행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불행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도 우리에게 행복의 조건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악을 물리치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시며 아픔을 없애 주시는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이에게 행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이내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자신과 비교하고 자신의 아들과 비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그 삶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라는 행복을 체험하지만, 결코 행복해지지 못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행복하려면 내 곁에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를 발견해야 합니다. 받은 것에 감사하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가지지 못할 것에 마음을 두는 순간, 하느님의 나라는 지옥으로 바뀌게 됩니다. 타인을 자신의 행복을 재는 도구로 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함께 기뻐해 줄 때 나에게도 행복이 찾아올 것입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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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나 단어를 이야기 해봅시다.

2.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합니다(3절). 나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나에게 일어나는 신앙적인 일을 보고 경험하고 있는지 묵상해보고 나는 어떤 신앙인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3. 나는 나자렛 사람들과 같이 선입견으로 신앙의 진리를 보지 못한 경험이 있는지 이야기 묵상해보고 신앙의 진리를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하기: 오늘 말씀(묵상/동영상)을 통해 내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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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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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몸 안에 가시를 안고 그 고통을 없애 달라고 애절하게 기도한 바오로 사도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누구나 자신을 괴롭히는 약점과 남에게 보이거나 들키고 싶지 않은 단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약점이 오히려 자만하지 않도록 겸손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 믿었기에,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숙명처럼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이셨듯이 바오로 사도도 자신의 숙명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에제키엘 예언자를 보내시면서, 그들이 예언자를 받아들이든 말든 그들 가운데에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십니다. 예언자 자신은 반대받는 표적이 될지언정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은 에제키엘 예언자는, 어떤 처지에서든 이스라엘의 회개를 선포하는 소명을 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께 냉소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늘 곁에서 별다를 바 없이 자라던 고향 사람이 갑자기 위대한 예언자로 칭송받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싫어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일수록 현실을 비판하고 되돌아볼 것을 외치는 예언자의 목소리를 피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내 약점을 들추어내고 단점을 지적하는 이들을 외면하고 싶어도, 때로는 그들의 비판 속에서 내 완고하고 편협한 생각을 열어 줄 예언자의 목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좋겠습니다. 겸손하게 나를 낮추면 오히려 하느님께서 나의 약함을 통해 나를 성장시켜 주시지 않을까요?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