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예수님의 승천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셨다는 것은 오늘 복음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지상에서의 사명을 다 마치시고,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하셨다는 뜻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셨기에 이제는 인간의 모습을 띠고 계시지 않습니다. 제1독서처럼 눈에 보이는 예수님을 찾지 않아야 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이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하느님으로서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주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세상은 점점 선과 악의 대립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생명과 사랑의 문화를 창조해 나가려는 노력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끝없이 세상을 타락시켜 나가는 악의 세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인간 생명을 경시하거나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대표적입니다.
주님 승천 대축일을 맞은 우리의 사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 스스로 예수님과 일치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생명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와 죽음의 문화에서 나오는 악취를 제대로 판별하게 해 주는 가치관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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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복음을 살펴보면 승천이 주님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 에페소서의 심오한 가르침을 깊이 묵상하면 승천은 아쉬워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경축해야 할 기념비적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승천은 예수님께서 만물을 주재하시는 아버지의 오른쪽에 앉으시어 아버지와 함께 온 세상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계심을 뜻합니다. 이와 같이 승천은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께서 이제 다시 영광스러운 당신 신성을 드러내시는 때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기간은 분명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제자들의 믿음으로, 희망으로, 증언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승천은 우리에게 ‘아직 아니’라고 충고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세상에 머물러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신학적으로 지극히 미성숙한 상상을 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현실적인 가상일 뿐입니다.
사도들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예수님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 곧 하느님 나라가 드러날 때인지 묻자, 예수님께서는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 권한으로 정하셨다고 밝히신 뒤, 오히려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은 물론 땅끝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증인이 되라고 사명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승천하시는 주님만 바라보면서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제자들 앞에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때까지는, 주님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 가야 합니다.
사도들과 같이 우리도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면서 주님 승천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은 분명 하나의 끝을 의미합니다. 이제 눈으로 직접 뵈옵는 믿음과 신앙은 끝나고, 그 대신에 시간과 공간을 영원히 초월하시는 주님과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주님의 승천은 하나의 시작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은 실망하고 의기소침하여 떠나간 것이 아니라, 크게 기뻐하며 희망을 안고 그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바야흐로 기쁨의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는 어떤 것도 부활 승천하신 주님과 헤어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슬픔도 번뇌도 절망도 죽음도 결코……! (출저: https://maria.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