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 마르코13,33-37;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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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35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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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우리는 대림 시기를 지내면서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이고 완성된 삶을 준비할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는 성탄절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고 이 세상 끝 날에 그분을 잘 맞이하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세주께서 강림하시기 전에 방황했던 유다 백성의 삶은, 우리가 죄를 지어 헤매는 상황에 비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진정한 평화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작품이지만 진흙과 같은 존재이므로 구세주의 강생을 더욱 간절히 기다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영적 자세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구원하시려고 늘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일어나 그분께 나아갈 희망을 갖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저마다 해야 할 일을 맡기신 다음, 기다리시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나태하게 살면서, 찾아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미혹의 졸음에 빠져서 주님을 제때에 맞이하지 못하게 하는 악의 세력들이 우리 주변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숨어 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탄생하셨던 것처럼, 오늘날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 우리의 문지방 앞에, 우리가 사는 세상과 역사 속에 오시어 계십니다. 그분을 알아볼 수 있는 차림새는 자신의 죄와 미약함을 인정하는 겸손입니다.(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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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이야기 해봅시다.

2. 영적으로 민감한(깨어있는) 사람의 모습과 둔감한 사람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우리는 늘 깨어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3. “그분을 알아볼 수 있는 차림새는 자신의 죄와 미약함을 인정하는 겸손입니다”에서 겸손 이외에 예수님을 알아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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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대림 시기는 말 그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때입니다. 대림 시기의 정점은 예수님의 탄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들이 전하는 것처럼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옛 계약과 새 계약의 분기점이 되고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어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대림 시기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면서 그분의 구원 업적을 기억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따라서 대림 시기는 예수님께서 이미 세상에 오신 것을 통하여 다시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영광 속에 다시 오시는 날은 종말입니다. 처음과 마지막이 맞닿아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에 종말에 관한 말씀을 들었고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한 해의 시작에 듣게 되는 말씀도 이와 비슷합니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기다림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간은 정해지지 않은, 언제까지인지 알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면서 해마다 그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이 두려움을 없애는 기쁨이 된 것처럼 오늘 우리도 다시 오실 예수님께 희망을 두고 그분을 기다립니다. 이것이 대림 시기의 의미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