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10장, 2-16절;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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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16

그때에 2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4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6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12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16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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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하느님께서는, 창조하신 동물과 새들이 아담에게 걸맞은 협력자가 되기에 부족하므로, 혼자 있지 않고 함께 동반할 사람으로 하와를 만들어 주십니다. 성경은 하와가 아담의 갈빗대에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아담은 하와를 보고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하고 외칩니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는 구절은 고대의 관습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유다인의 관습은 여자가 부모의 집을 떠나 남편의 가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혼인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남녀의 결합’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이혼장을 써 주라고 한 것이라며, 이혼은 하느님의 창조 목적에 어긋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정당한 혼인의 결합은 사람이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남자의 소유물로 인식되던 시대에 창조주께서 의도하신 남자와 여자의 동등성을 복구시키고자 하십니다. 남녀 모두 같은 살과 뼈를 가지고 있으며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된 인격체임을 강조하십니다. 구약 시대에 용인되었던 일부다처제는 인간의 욕망과 권력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메시아께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하느님의 근본 질서를 회복시키고 계십니다.
남자와 여자의 평등성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합니다.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자세는 행복한 가정의 비결입니다. 배우자의 약점을 덮어 주고 차이점을 존중하는 태도는 자녀들에게 인격적인 사랑을 배우게 하는 원천이 됩니다.(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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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나 단어를 이야기 해봅시다.(예수님을 만나 다시 들을 수 있게된 사람은 그후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자유롭게 상상해 보십시요.

2. 배우자나 친구가 신앙에 함께 동반한 경험이 있는지 묵상해 보고 신앙생활을 할때 친구나 배우자가 어떻게 도움을 주웠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아직 신앙 안에서 만나지 못한 친구/배우자가 있다면 앞으로 만나게 될 친구/배우자와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 해봅시다.

3.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특성에 대해 이야기 묵상해보고 무엇이 우리를 아이들과 같은 모습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하기: 오늘 말씀(묵상/동영상)을 통해 내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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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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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전례 말씀은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에 대하여 가르침을 줍니다. 혼인은 남녀 간의 사랑의 계약만이 아니라 인간 생활의 기본 질서로서, 하나의 제도이며 신약에 와서는 칠성사 가운데 하나의 성사입니다. 혼인 안에서 남녀는 서로를 보호하고 상대방의 약점과 한계를 보완함으로써 더욱 성숙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뒤 그에게 온갖 짐승과 새를 데려다 주셨지만, 사람은 알맞은 협력자, 적합한 짝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사람은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이처럼 남녀는 서로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배우자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입니다.
남녀 구별 없이 인간은 똑같은 근원에서 나온 한 혈육이요, 그에 따른 공동 운명이기에 서로 사랑하고 아껴 주어야 한다고 제2독서도 강조합니다. 이 연대 의식, 공동체성을 생각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됩니다. 참으로 인간에게 알맞은 협력자, 짝은 인간뿐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더구나 혈연관계도 아닌 부부가 평생 사랑하는 것은 자녀나 형제나 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고 더 큰 희생을 요구하지요. 그래서 요즈음 누군가에게 정을 주면서 상처를 입기보다는 차라리 반려동물을 기르거나 화초 등을 키우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께서도 인간을 사랑하시기가 결코 쉽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 하느님께서 다른 어떤 동물이 아니라 오직 인간 때문에 당신의 창조 사업을 후회하셨지만,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셨듯이, 우리가 “알맞은 협력자”인 배우자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의 존귀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하더라도, 배우자를 포함하여 인간에 대한 인격적인 사랑과 신의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면 우리의 나날과 미래는 위안이 되고 희망적일 것입니다. (출저: https://maria.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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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하여 혼인의 의미를 일깨워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혼인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를 따라 산다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교회의 가르침대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첫 번째 부부는 ‘아담과 하와’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아담은 하와를 만나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하고 외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협력자를 마련해 주신 데 대한 기쁨과 감사의 외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고 난 뒤, 하느님 앞에서 하와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창세 3,12). 앞에서 한 말과 지금 이 말이 같은 사람이 한 것으로 보이나요? 아담의 이 말을 들은 하와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그에게 아담은 남편이 아니라, 이른바 ‘남의 편’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인류의 첫 부부도 이처럼 현실적인 모습을 지녔습니다.
성경이 전해 주는 부부의 모습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이 맞이한 어려움을 하느님 안에서 함께 견뎌 내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하느님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혼인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때로는 ‘남의 편’ 같고, 때로는 ‘부인하고 싶은 사람’일 수 있겠지만, 남편 그리고 아내는 하느님께서 보내 주시어 한 몸을 이룬 존재임을 기억합시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