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5장 1-11절;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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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11

1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2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7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8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9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10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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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세 명의 제자, 곧 시몬 베드로, 그리고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세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활 시기의 가장 중요한 때에 예수님과 함께하였으며,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난 뒤에 초대 교회에서도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세 제자들의 부르심은 개인적인 부르심이면서 교회 공동체의 부르심과 소명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군중을 가르치신 다음, 시몬에게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깊은 물은 언제고 위험합니다. 갑자기 풍랑이 일 수도 있고, 사고가 났을 때 멀쩡히 돌아올 수 있는 확률도 높지 않습니다. 결국 사람을 낚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복음을 선포하고자 위험을 무릅쓸 각오입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아침나절에는 고기를 잡을 가능성이 없고 밤에 그물질을 해야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내리라 하셨고,

그 결과 배 두 척이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습니다. 복음 선포를 비롯한 하느님의 일은, 사람이 쌓아 온 경험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지만, 실제로 그 일을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에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은 것은, 분열될 수 없는 교회의 특성을 보여 줍니다. 교회는 찢어져서 여러 개로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본디 하나로서 다양성 안에서 언제나 하나 됨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부르심은 개별적인 부르심이면서 하나의 공통된 응답으로 귀결되어야 하는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에 귀 기울이고 응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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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이야기 해보거나 다음 관점에서 성경 말씀을 묵상해 봅시다.

   – 예수님 입장에서

   – 시몬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의 입장에서

2. “부족한 저를 불러 주셔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인생의 해답을 찾은 경험을 묵상해봅시다. 신앙의 해답(신앙의 행복)이 세속에서 주는 행복과 어떻게 달랐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3.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에서 나는 주님에게 쓰임 받는 종이 되기를 간구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당시에는 몰랐지만 ‘아마 주님이 나를 부르신게 아니였나?’라고 생각나는 주님의 초대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4. 공생활이란 예수께서 가정 생활(私生活)을 떠나 공적으로 복음 선포를 시작한 이후의 예수님 일상 생활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공생활”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떤 계기로 “공생활”을 시작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아직 하지 못하였다면 어떤 방식으로 복음을 선포하며 생활하고 싶은지 이야기 해봅시다.

5. 결심하기: 오늘 말씀(묵상/동영상)을 통해 내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고 싶은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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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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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아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첫 출근을 하던 아침을 기억하십니까? 그날 하루는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마음이 얼마만큼 남아 있습니까?
사제 서품 후 첫 미사 때, 새 사제들의 인사말 내용을 살펴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글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족한 저를 불러 주셔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감사 인사입니다. 진솔한 표현이기에 잔잔한 전율도 전해 오지만, 이런 인사를 들을 때마다, 저 마음만 잃지 않으면 충분하리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5년, 10년, 20년이 지났을 때에는, 과연 어떨까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정말로 깨달았습니다. 이사야는 가까이할 수도, 범접할 수도 없이 거룩하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죄스러움을 느꼈고, 바오로 사도는 박해자였던 자신의 과오를 명백히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는 자신이 그분과 함께하기에 부당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들은 모두, 나같이 능력 있는 사람이 일을 도와 드리고 있으니 하느님께서 나에게 고마워하셔야 한다거나 내가 도와준 사람들이 나에게 보답해야 한다고는 감히 생각하지도,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자신들이 무엇인가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잘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당신의 제자로 삼으시거나 가까이하지 않으시고 칠삭둥이라고 자처하는 겸손한 이들을 찾으시는 모양입니다.
오늘날 복음 선포자에게 가장 절실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베드로 사도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면서 의탁하는 겸손한 자세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출저:https://maria.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