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4장, 21-30절; 예수님께서는 엘리야와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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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예수님께서는 엘리야와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1-30

그때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21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년 육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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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을 방문하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결정적인 구원의 시기에 이르렀다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읽으시고, 그 말씀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나 이 선언을 듣는 고향 사람들은,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면서도,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예수님께서 요셉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걸려 넘어지고 맙니다. 그들은 은총의 메시지는 기쁘게 받아들이면서도, 가난한 목수의 아들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떤 예언자도 제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의 사례는, 하느님께서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들을 위하여 행하신 기적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모두 제쳐 놓으시고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말을 들은 나자렛 사람들은, 화가 나서 예수님을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당신의 갈 길을 가십니다.
예수님의 고향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이라고 자부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수님께서 배척받고 돌아가실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복음의 기쁜 소식이 이스라엘을 넘어 세상 끝까지 전파될 것이라는 하느님 구원 계획의 신비를 미리 보여 줍니다.
오늘 복음 내용은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의 도전이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이며 신자라는 사실에 머무르다 보면,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행하는 데 오히려 무뎌질 수도 있음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순간순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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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이야기 해보거나 다음 관점에서 성경 말씀을 묵상해 봅시다.

2.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에서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합니다. 나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나에게 일어나는 신앙적인 일을 보고 경험하고 있는지 묵상해보고 나는 어떤 신앙인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3. 나는 나자렛 사람들과 같이 선입견으로 신앙의 진리를 보지 못한 경험이 있는지 이야기 묵상해보고 신앙의 진리를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하기: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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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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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평소에는 전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서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사람이, 뜻하지 않은 좋은 말이나 선행을 보일 때 당연히 의아스럽게 여깁니다. 그래서 뭔가 다른 이유가 있고 보이지 않는 손익 계산이 분명해서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지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 사람이 혹시라도 마음을 고쳐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변덕스러운 사람이기에, 얼마 안 가서 본심을 드러내리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갖고 있는 선입견과 판단이 이렇게 눈앞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고향인 나자렛에 오시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는데,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서 기적을 행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호기심으로 그분께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들어 보니, 과연 소문대로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면서도, 그분이 “요셉의 아들”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들은 이 놀라운 말씀을 있는 그대로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인정하지 못합니다. 한낱 목수의 아들인 그분에게서 그런 말씀들이 나오는 것이 뜻밖이며 의아스럽다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어떤 기적을 행하신다면 믿어 보겠다는 자세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한 태도로는 기적을 베풀어 주어도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을 뵙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5,8 참조).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놀라운 일은 놀라운 일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신 하느님의 능력을 보고 깨닫게 되어 신앙에 도달하여 우리도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출저:https://maria.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