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4장 1-13절;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유혹을 받으셨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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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유혹을 받으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1-13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2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6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7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9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11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1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13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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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성경에서 사십이라는 수는 매우 중요합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뒤 하늘이 열려 밤낮으로 비가 내리며 땅을 씻어 냈던 기간이 사십 일이었고(창세 7,12.17 참조), 산봉우리들이 드러난 뒤 노아가 방주의 창을 열려고 기다린 기간도 사십 일이었습니다(창세 8,6 참조). 모세가 하느님과 계약을 맺으려고 산에서 머물렀던 기간이 사십 일이었고(탈출 24,18 참조),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생활을 한 것이 사십 년이었습니다(탈출 16,35; 민수 14,34 참조). 이렇게 보면 사십이라는 수는 정화의 시기, 기다림과 준비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이 시간을 거친 이들은 구원을 봅니다. 그러나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정찰대를 보내어 사십 일 동안 정찰합니다(민수 13,25 참조). 그러나 그들 가운데 여호수아와 칼렙만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구원을 봅니다. 또한 요나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니네베에 심판을 선포하신 뒤 사십 일 뒤에도 그들이 변화가 없다면 그들을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요나 3,4 참조). 이렇게 보니 사십 일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구원을, 그렇지 못한 이에게는 심판을 준비하는 시기가 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하십니까?
우리 모두는 바오로 사도가 제2독서에서 이야기하듯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얻게 된 이들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을 저버리게 하는 유혹의 홍수 속에 자주 빠지며 살아갑니다. 사순 첫 주일을 지내면서 다시 한번 오늘 복음의 예수님처럼 모든 유혹을 이겨 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사 주님께 청합시다.(염철호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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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이야기 해봅시다.

2. 지나고 보니 “사탄의 유혹이 아니였나?”라고 생각되는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난 그 유혹에 넘어갔는지, 반대로 유혹에서 벗어났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유혹에서 벗어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 해봅시다.

3. 예수님도 주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주님을 도구화를 하며 지내고 있는지 하느님을 시험한 경험은 없는지 묵상해 보고 주님과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나만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4.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에서 나는 어떤 방법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아직 하지 못하였다면 어떤 노력을 할지 이야기 해봅시다.

5. 결심: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 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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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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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언젠가 어려운 과목을 강의하던 신부님이 학생들에게 그 내용을 이해했는지 물으시며, “이해했는지 아닌지는 나중에 보면 알겠지.”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 나중은 시험 시기였습니다. 아마도 시험이 없다면 학생이 과연 그 내용을 파악했는지 여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유혹과 시련을 겪는 순간에는 지금 드리는 이 말씀이 너무 매정하고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분명 유혹은 우리의 신앙을 확인하고 성장시켜 줍니다. 아무런 유혹이 없다면 신앙이 있는지 여부를 제대로 알 수는 없겠지요. 사람들 사이에서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위험한 순간이 닥쳐오면 얼마나 쉽게 그 믿음을 포기하는지 ……. 하느님만 신뢰하며 의지한다고 장담하던 사람도, 막상 어려운 유혹과 시련의 때가 오면 악마가 제시하는 빵과 권세와 영광의 유혹에 아주 쉽게 넘어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약점이며 한계인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 시기는, 그들의 신앙이 시험받는 때였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그들은 모든 것이 불편하고 척박한 광야에서의 자유보다는, 노예근성에 젖어 종살이하던 이집트의 음식을 더 그리워하며 울부짖었고, 더욱이 시련이 닥쳐오면 하느님의 약속마저 의심했습니다. 예수님께도 광야 시기가 있었는데, 그 광야에서 예수님께서는 신명기의 말씀들을 인용하시면서 이스라엘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십니다.
우리에게도 광야는 있습니다. 믿음 없이는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광야들이, 어느 순간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서 우리를 위협하기도 할 것입니다. 칠흑같이 어둡고 질식할 정도로 꽉 막히고 암울한 광야 시기에도, 한 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끝까지 고백할 수 있는 은총과 믿음을 더해 주시도록 간청합시다. (출저:https://maria.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