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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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5-28.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5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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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교회는 전례주년으로 새해를 맞이합니다. ‘대림’이라는 낱말은 ‘오심’, ‘도착’을 뜻합니다. 이 시기에 교회는 우리에게 오시는 그리스도를 기쁘게 맞이하도록 준비하라고 권고합니다. 성탄 때에 오시는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과 세상 종말에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죄만 빼고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 참인간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베들레헴에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고, 서른 살이 되실 때까지 나자렛에서 사셨습니다. 그 뒤에 팔레스티나 전역을 두루 다니시며 기쁜 소식을 전하셨고, 수난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성부 오른편에 다시 앉으셨으며,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 살아 계실 때 이루신 구원 행위를 통하여 모든 이에게 구원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인간과 세상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과업은 이 세상의 마지막 한 사람이 구원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 오르실 때 인류 구원의 과업을 교회에 맡기셨고, 당신의 구원 행위를 우리 안에서, 특히 전례와 성사를 거행할 때 재현하십니다. 예수님의 재림 목적은 모든 이의 구원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살아야 할 단순하고도 분명한 방식을 보여 줍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항구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참된 사랑은 우리 신앙생활의 잣대가 되는 이웃을 위한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끝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에 맡기신 일을 충실하게 수행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늘 실천하는 것입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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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이야기 해봅시다.
2)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이 말씀을 바탕으로, 방탕하거나 만취하여 거룩한 성전인 우리의 몸을 훼손하는 행동이 신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고, 참된 신앙인으로서 건강한 친교를 나누기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방법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3) 공항에서 소중한 사람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대림절에 예수님을 그저 ‘오셔도 되고 안 오셔도 되는 듯’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꼭 오셔야 합니다’라고 고백하며 간절히 기다려본 적이 있는지 함께 나눠봅시다. 그리고 예수님을 더욱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4) 새해에 어떤 신앙적인 계획이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개인적인 계획도 좋고 함께 나눔을 하고 있다면 그룹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신앙적인 계획을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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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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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어제는 교회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치는 날이었고 오늘은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대림 시기의 첫날인데, 어제와 오늘 복음이 같습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가 어제 복음이었지요. 다시 생각해 보니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림 시기가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을 기념하는 성탄을 기다리는 때이지만, 마지막 때에 영광 중에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제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두 번째 오심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방탕, 만취, 일상의 근심은 우리를 좁은 벽 안에 가두어 버려, 지금 이 순간 외에는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게 만듭니다. 만취한 사람은 술이 깨었을 때의 세상이 어떠한지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일상의 근심에 얽매인 사람도 그 일 이외의 다른 것은 생각하지도 못합니다. 자기 일에 몰두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알지 못하듯이, 이렇게 자유롭지 못한 이들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문을 열고 들어오셔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 마음과 우리 집의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안테나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누군가 인생은 기다림 속에서 저물어 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다림은 막연하고 모호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오심을 기쁨과 희망 속에서 준비하는 기다림입니다. 주님의 재림 못지않게 우리 개개인의 죽음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도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주님의 다시 오심이, 늘 깨어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주님과의 감격적인 해후의 순간이 되겠지만, 영원한 생명을 잊고 순간적인 것에만 몰두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만남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출저:https://maria.catholic.or.kr/)
♣복음말씀의 향기♣ No4059
12월1일[대림 제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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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를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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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방송미사**
https://youtu.be/L5oZO61___g
[인천교구 이용옥 요한보스코(청라3동성당 주임) 신부님 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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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기도하는 사람이란 깨어있는 상태로 하느님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저희 공동체 전례 담당자이신 어르신 신부님께서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대림 시기 시작하는데, 대림환 어쩔거요?” 하고 물으셨습니다.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저는 부랴부랴 창고에서 아이 키 만한 큰 초들을 쇠톱으로 자르고 칼로 다듬었습니다. 시골스럽게 대성당과 소성당에 대림환을 설치해놓으니, 그제야 어르신 신부님 얼굴에 화색이 환하게 돌았습니다.
대림환 장식은 초기 양성기 형제들이나 젊은 형제들, 아니면 봉사 오시는 자매님들의 몫이라 생각했는데, 깊은 시골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웬만한 것은 직접 다 해야 합니다. 열심히 초를 자르고 깎던 제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대림 시기 초를 깎는 마음으로, 나를 깎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 하늘을 찌르는 교만을 깎고, 나태함과 게으름의 나를 깎고, 하느님께 대한 불신과 불충실한 나를 깎으며 그렇게 한 달을 살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오늘 전례력으로 새해 첫날, 돌아보니, 지난 한 해도 어김없이 결핍과 상처투성이의 삶, 실패와 부끄러움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제 깊은 상처 그 틈 사이로 크신 주님의 자비가 흘러들어왔음을 실감합니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예수님께서는 각별한 당부 말씀을 우리에게 건네고 계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 날이 너희를 덫처럼 덮치지 않게 하여라.”(루카 21장 34절)
돌아보니 참으로 많은 시간을 헛되고 의미 없이 보냈습니다. 내 인생 여정에서 앞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금쪽같은 시간을 흥청망청 놀고, 먹고, 마시는데 소모했습니다. 모든 것 하느님 자비하신 손길에 맡겨드리지 못하고 부끄럽게도 오랜 시간 근심하고 걱정했습니다.
놀고,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듭니다. 한 치 앞만 내다보게 되니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만듭니다. 남아있는 시간, 남아있는 인생을 주님 권고에 따라 살아가야겠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장 36절)
깨어있음은 언제나 기도와 연결돼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란 깨어있는 상태로 하느님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일정 시간은 잠을 자야 하는 인간이기에 항상 깨어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하루의 많은 시간을 생업에 몰두해야 하는 게 우리네 삶입니다.
그러나 잠드는 순간, 잠자는 순간조차도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깨어있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일할 때 역시 주님께서 내 옆에서 내를 지켜보시고 나를 도와주신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면 그 역시 깨어있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국 깨어 기도함을 통해 우리는 주님 재림의 날에도 굳건하고 기쁘게 서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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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동영상)
https://youtu.be/t74iDEb6xQ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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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인격적으로 만나는 법: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 빛이 떠오른다>
오늘 복음은 실상 세상의 마지막 때를 예언하고 계십니다. 세상 마지막 때는 고통의 때 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사람의 아들이 권능을 떨치며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법입니다. 마지막은 항상 새로운 시작입니다. 목동들은 그 마지막 때에 아기 예수님을 만나 위로를 받았습니다. 당시 목동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직업이었습니다. 고통받는 이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보이시는 주님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마태오 복음엔 이런 이사야서의 인용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6)
별은 밝은 도시가 아니라 깜깜한 시골에서 더 잘 보입니다. 우리가 죽음 직전까지 가지 않으면 생명이신 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신학교에 들어가서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행복을 찾아 들어갔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행복하게 해주지 않으면 죽여달라는 마음으로 일주일 단식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때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한번의 만남의 힘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시간』이란 책에는 봉하령 요셉 신부의 기도 체험인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결정적인 사건, 죽을 고비」라는 꼭지가 있습니다. 봉하령 신부는 부모의 낙태 시도를 이기고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돌도 되기 전,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1월 동네 할머니가 아기를 업고 우물물을 길으려다 20미터 우물 속으로 떨어져 돌아가셨습니다. 아기도 죽었지만, 그를 구한 분이 침을 놓아 살렸습니다.
열 살 때는 친구들과 놀다가 경운기에 끼여 왼 팔은 잘렸고 오른 팔은 처참할 정도로 뭉게져버렸습니다. 오른 팔은 하루 꼬박 걸린 수술로 회복할 수 있었으나 왼 팔은 잃었습니다. 그 무렵 성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는 팔을 감추고 본심도 감추었습니다. 그러다 ‘선택’이란 청년 피정에 가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게 되었고 그때 자신이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되어서도 장애로 인해 취업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수도회에 입회하기로 합니다. 장애인을 받아주는 수도회가 없었지만, 갓 만들어지기 시작한 중증장애인을 돌보는 ‘작은예수 수도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8년 서른셋의 나이에 한국 신학교에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2008년에 부제품을 받았으나 15년 동안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제품을 받지 못했습니다. 2023년 사제품을 받을 때까지 부제로 15년 정도 살아야 했습니다. 이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뛰쳐나가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풍선처럼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숨을 쉴 수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봉 신부는 이때 ‘기도’를 선택했습니다. 늘 입에 이 노래를 달고 살았습니다.
“하느님, 내 하느님 어찌 저를 버리셨나이까. 하느님, 내 하느님 어찌 저를 버리셨나이까.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생명의 하느님을 그리워하나이다.”
결국 숨이 막혀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에 오신 것도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신 것도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도 다 “너를 위해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봉 신부는 “고통이 없었다면, 아픔이 없었다면, 좌절이 없었다면 나는 그토록 애절하게 주님을 찾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그분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죽을만큼 원해야 생명이신 분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확실합니다. ‘엄마 찾아 3만리’를 보십시오. 엄마는 아들 마르코를 살리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먼 아르헨티나까지 돈을 벌러 갔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만큼 멀리 있습니다. 그분을 만나려면 나도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너무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단식하시며 광야에서 기도하신 만큼 절실히 주님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한 5년은 가슴이 저미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성체조배를 하면 잠깐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바라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생명의 빛을 보고 싶다면 최대한 어둠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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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비행기를 타면서 가끔 웃지 못할 일이 생기곤 합니다. 포트워스 신부님과 하와이엘 갈 때입니다. 전날 확인했을 때는 터미널 A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럴 줄 알고 터미널 A로 갔습니다. 게이트는 39번이었습니다. 저는 신부님께 전화했습니다. 게이트 39번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도 39번에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신부님이 없었습니다. 다시 전화해서 어디에 있냐고 물었습니다. 신부님은 터미널 D에 있었습니다. 게이트는 같은 39번이지만 터미널이 달랐습니다. 알아보니 아침에 터미널이 변경되었습니다. 저는 터미널 D를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다행히 터미널 D로 가는 기차가 있었습니다. 저는 신부님과 전화 통화를 해서 다행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지만, 제가 아는 주교님은 게이트가 바뀐 걸 모르고 있다가 비행기를 놓치고, 다음날 비행기를 탔습니다. ‘하느님께서 쉼표를 찍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우리를 내셨기에 주님 안에 쉬기까지는 내 영혼이 평안하지 않나이다.” 깨어 있어야 하는 데는 주교님도, 사제도, 수도자도, 평신도도 예외가 없습니다.
같은 지구지만 우리는 ‘시차’가 있습니다. 서울은 이곳 달라스보다 15시간 먼저 하루가 시작됩니다. 뉴욕은 이곳 달라스보다 1시간 먼저 하루가 시작됩니다. 교회의 시간은 세상의 시간보다 1달 정도 먼저 시작됩니다. 교회의 시간은 태양을 중심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12월 25일이고, 교회는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기 위해서 4주간의 대림 시기를 정하였습니다. 오늘은 12월 1일이고, 대림 제1주일입니다. 교회는 대림 제1주일을 새로운 한 해의 시작으로 정했습니다. 세상 사람보다 1달 먼저 새해를 시작했으니 더 감사하며, 더 기뻐하며, 더 나누며 살면 좋겠습니다. 저는 2025년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사목 지침을 정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사목 지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2025년 본당 사목 지침)
1. 사랑과 배려를 바탕으로 한 신앙생활, 사랑과 배려가 공존하는 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모든 구성원은 서로를 존중하고 도우며, 상호 간의 관심과 배려를 나눕니다. 소그룹 모임, 친목 모임, 그룹 공동 활동 등을 통해 교회 구성원들의 상호작용과 유대감을 증진하며, 공동체 의식을 강화합니다.
2. 다양한 교육 및 활동, 교회는 다양한 연령층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교육 및 활동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각 개인의 영적 성장과 친교를 나누며, 공동체 내에서의 상호 지원과 협력을 도모합니다. 구역모임, 성경 공부, 기도 모임, 성가대 활동, 봉사활동 등을 통해 교회 구성원들은 서로를 도우며 신앙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세대 모임을 활성화 하도록 합니다. 소그룹과 단체에 가입해서 봉사할 수 있도록 합니다.
3. 순교 정신과 사회봉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의 본보기로서 지역사회에 봉사합니다. 교회 구성원들은 이웃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손을 잡아 봉사하는 문화를 정착시킵니다. 지역사회나 어려운 이웃을 위한 지원 활동, 재난 구호 봉사, 장애인 센터 방문 등을 통해 교회는 순교 정신과 사랑의 행동을 실천합니다.
4. 미사와 기도의 중요성 강조, 미사와 기도는 교회 생활의 핵심입니다. 교회 구성원들은 꾸준한 미사 참례와 개인적인 기도 생활을 통해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영적인 성장을 이룹니다. 온라인 미사, 주일 미사, 평일 미사에 참례하면서 교회 구성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미사를 통해 영적으로 충전됩니다.
5. 본당 설립 50주년 준비 위원회 발족, 2027년은 본당 설립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50년을 돌아보며 다가오는 50년을 준비할 수 있도록 준비 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이런 사목 지침을 통해 달라스 성 김대건 성당은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를 나누며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교회로 거듭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와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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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루카 21,25-28.34-36: 너희가 구원받을 때가 가까이 왔다.
오늘부터 대림시기가 시작된다. 대림이란 인류가 고통스러운 체험을 통하여 구원에 대한 열망으로 그리스도께서 정의와 평화를 주시는 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실 것을 준비하고 바라고 희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기다림은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셨던”(요한 1,14) 그 역사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하여 그분에 대한 새로운 체험을 통하여 그분이 영광중에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된다. 그분은 이제 매 순간 우리에게 오시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이 대림을 살아야 하고 그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예레미야서는 인류가 기다리는 메시아가 “다윗의 정통 왕손(싹)”(예레 33,15)으로 메마른 땅에서 생존의 희망인 생명의 싹이시다. 오직 하느님만이 이 메시아를 일으켜 주실 수 있고, 그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며, 바로 그분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역사적으로 오신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의 사명, 정의와 평화를 이룰 사명, 정신적 육체적 모든 악을 치유해야 할 사명은 우리가 느끼듯이 성취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림이란 신앙인의 본질적 차원인 동시에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도 기다림의 자세를 알려주고자 한다. 이 기다림은 성탄을 넘어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께 대한 것이다. 오늘의 말씀은 공관복음에 나타나는 종말론적 담화의 내용이다. 복음에서는 여러 가지 징조들을 들어 신앙인들의 준비된 삶을 살도록 초대하고 있다.(25-26절)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27절) 이때 세상은 새로워져, 낡은 세상은 가고, 악과 죽음의 세력은 더는 그 영광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28절). 이러한 새로운 세상은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시지만, 인간의 거룩한 삶과 깨어 기다림으로 준비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34-36절) 말씀하신다. 세상 걱정에 휩싸인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는 나의 인간적인 것에 매여 하느님께로 가기보다 죽음의 길로 가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날은 어느 때 올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때는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이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났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영광스러운 만남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깨어있는 삶을 언제나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하신다(36절). 그러므로 항상 깨어있는 삶이나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삶 전체가 계속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삶이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바로 대림의 삶인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을 잘 맞이하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을 통하여 계속 우리에게 오고 계시는 분이시며, 이제 우리의 매일의 삶을 통하여 잘 준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 준비는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쓸데없는 마지막 날에 관한 생각과 두려움 때문에 이 순간을 잃는다면 우리가 원하는 가장 중요한 것까지 잃을 수도 있다. 주님께서 오심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사는 현재 이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 안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는, 체험할 수 있는 삶이 계속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삶을 우리가 노력한다면 우리가 시간 안에 살면서도 시간을 초월하며 사는 것이다. 나의 이 순간의 삶은 바로 하느님 앞에 영원한 가치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다리는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며, 이 세상을 새로운 하늘과 새 땅으로 만드시는 분이시다. 참된 구원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의 이러한 선물도 인간의 협력이 없으면 주어지지 않는다. 그분을 기다리는 우리의 삶 역시 하느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생활이어야 한다. 현재의 이 삶은 구원을 체험하는 장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의 삶에서 사랑의 삶을 노력해야 한다. 이 사랑의 삶이 곧 깨어있는 삶이며, 깨어있을 때 정의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고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줄 수 있는 삶이 될 것이며, 이러한 삶이 사랑의 완성인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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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대전교구 김재덕 베드로 신부님]
일상에서 기도가 사라져 버린 이유는 분명합니다. 신앙생활이 갈수록 버겁게 느껴지고 짐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아주 분명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전혀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1테살 3,13)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만일 내 삶에서 기도가 사라져 버렸고, 고해성사도 하느님과 함께하는 미사 시간도, 신앙생활의 모든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삶을 살았다면,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순간이 어떻게 느껴질까요? 우리 구원을 위한 속량이 이루어지는 희망 속에서 그분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하느님과 맺은 관계가 무너졌다면 기도하는 삶을 시작하십시오. 기도는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여전히 나를 떠나시지도 포기하시지도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깨닫게 해 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우리 삶이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가 시작됩니다. 기도하는 삶과 함께 그분을 우리 구원자로 맞이할 수 있는 영적 힘을 키워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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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