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5장 1-32절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탕자)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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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31 (1-10짧은)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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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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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서양의 한 인류학자가 남아프리카 부족의 아이들에게 과자 상자를 보여 주며 달리기 경주를 시켜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우분투”라고 말하며 함께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백인 학자가 의아해하며 왜 경쟁하지 않느냐고 묻자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슬퍼하는데 어찌 나만 행복할 수 있나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분투”란 아프리카 코사어로 ‘네가 있어 내가 있다.’ 또는 ‘함께 있어 내가 있다.’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이웃과 함께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게 창조되었습니다. 이웃과 경쟁하는 것은 독약을 마시며 건강해지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에 내려오신 이유는, 인간이 행복하지 않으면 당신도 행복할 수 없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아기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데 혼자 행복할 수 있는 어머니는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회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회개란 무엇이 참행복인지 아는 것입니다. 처음에 작은아들은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고통임을 깨닫고 아버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곧 자신의 행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 큰아들은 아버지 곁에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하였습니다.

아직은 아버지의 행복과 자신의 행복이 일치를 이루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죄를 이겨 행복할 때 아버지도 행복하십니다. 죄를 짓는 사람이 부러우면 아직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죄는 자신과 이웃을 아프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곧 나의 행복임을 아는 사람이 회개한 사람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죄를 멀리할 수 있는 사람이 회개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참으로 하느님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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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이야기 해봅시다.

2. 신앙생활을 하며 큰아들 처럼 주님에게 실망한 경험이 있는지 묵상해 보고 내가 생각했을때 공평하지 않는 일이 앞으로 생길때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헤쳐 나아가야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3. 나는 주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주님 안에서 자유과 세속에서의 자유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야기 해보고 주님을 떠나면 자유로울 줄 알았던 작은아들처럼 주님과 멀어졌던 경험이 있었는지, 어떤 계기로 주님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 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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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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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우리는 고집스럽고 오만하여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그분의 길을 벗어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를 하였을 때, 하느님께서 진노하시어 재앙을 내리려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진노가 죄인들에게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간청을 하느님께서는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자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한때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던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자비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한없는 자비로 죄인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죄 많은 우리가 당신에게 돌아와서 자비로운 품에 안기기를 기다리십니다. 마치 거지나 다름없는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왔을 때, 멀리서 즉시 알아보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듯이,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사람에게 넘치는 은총을 주십니다. 은총의 잔치가 벌어져 모든 사람이 기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회개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천사들을 기쁘게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의롭다고 자만하여 죄인의 회개를 시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의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출저:https://maria.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