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4장 25-33절;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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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5-33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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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예전에 아들을 너무나 아낀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시집온 며느리가 아들을 빼앗아 간 것 같아서 며느리를 미워하였습니다. 결국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괴롭힘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아들은 어머니를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아들을 위해서 살았는데 그럴 수 있느냐며 자신을 떠난 아들을 원망하였습니다.사람들은 흔히 ‘사랑’과 ‘소유’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위 어머니가 한 것은 ‘소유’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물건은 소유하는 것이고 사람은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을 물건처럼 소유하려 하니 좋은 결말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오히려 보내 주어야 합니다.성모님께서는 가장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성전에서 봉헌하셨습니다. 아드님이 십자가에서 죽으면 안 된다고 떼를 쓰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하느님께 봉헌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표현 방법입니다. 사랑하면 흘려보내 주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미워하라’는 말은 ‘봉헌하라’는 뜻입니다. 봉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될 자격을 잃습니다.예수님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투자의 귀재가 자신에게 적은 돈을 맡기면 크게 불려 주겠다고 말한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적은 돈을 아끼지 않고 과감히 그에게 내어 줄 것입니다. 이렇게 더 큰 돈을 위해서 적은 돈이라도 내어놓아야 하듯이, 더 큰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이것이 주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려면 다른 모든 것을 내어놓고 미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아드님까지 내어놓으셨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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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이야기 해봅시다.

2. 나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사랑’과 ‘소유’를 구분하지 못해서 남들에게 상처를 준 경험이 있는지, ‘소유’ 보다는 ‘사랑’을 선택해서 주님에게 많은 은총을 받은 경험이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3. “‘미워하라’는 말은 ‘봉헌하라’는 뜻입니다”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소유물을 묵상해 보고 무엇이 우리가 봉헌하길 막고 있는지, 어떤걸 주님에게 더 봉헌하면 좋을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 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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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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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바오로 사도의 늙은 모습과 감옥에 갇혀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이 더욱 실감납니다. “죽어야 할 인간의 생각은 보잘것없고”,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 하는 인간의 면모가 생각납니다. 위대한 사도이지만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려 애쓰는 한 인간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됨은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겠다는 선택입니다. 그분처럼 자신을 낮추고, 포기하며 살아가겠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지닌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삶이 두려워 그것을 회피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길은 몹시도 힘든 길이며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바로 그러한 길을 걸어가셨기에, 우리도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내딛게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집과 욕망을 하나씩 버리게 됩니다.
십자가의 길 여정 안에서 우리는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게 됩니다. 이러한 연약함은 우리가 날마다 지고 갈 십자가의 일부가 됩니다. 인간의 연약함은 주님과 분리될 동기가 되지 않고 오히려 은총의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십자가의 길을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권고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걷는 십자가의 작은 희생과 고통들을 구원의 열매로 바꾸어 주십니다.
일상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로 변모됩니다. 우리가 가지는 작은 용기를 통해 교회는 건설됩니다. 우리가 지니는 전적인 신뢰와 헌신으로 그리스도의 몸은 자라납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출저:https://maria.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