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2장 49-53절;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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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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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 불은 성령의 불, 하느님을 향한 열정의 불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도 이런 불길이 훨훨 타올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길이 타오르려면 거쳐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길이지요.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하시며 그 길이 수난의 길임을 역설하십니다.
진정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와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가치가 틀리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을 따르다 보니, 가족 관계나 인간관계에서도 의견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불화나 분열마저 생길 수 있지요.

이를 내다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과 일치하지 않는 사상 체계나 정치 사회적 관습을 거슬러 싸워야 합니다. 틀린 것은 ‘틀렸다.’라고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많은 신앙인이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면서도 막상 그 뜻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달라지며, 불화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무엇이 그분의 뜻에 맞는 것인지, 분별해 내야만 합니다. 지혜롭게 판단하지 못할 때, 또 다른 불화가 그리스도 때문에 생길 것입니다.(출저:https://maria.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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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나누어 봅시다.

2) “틀린 것은 ‘틀렸다.’라고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에서 분위기 때문에 옳은 일을(말을) 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헤쳐 나아갈지 또 어떻게 주님을 향한 열정의 불을 만들어 낼지 이야기 해봅시다.

3) 나는 세상 속에서 구별된 자로서 살아가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나는 미사 참여 이외에 세상 속에서 구변된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 해보고 아직 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떤 가치관과 어떤 삶을 살아가는게 주님이 원하시는 삶인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 오늘 말씀을 토대로 나는 어떤 생활을 해야될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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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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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명을 앞두고 당신 마음의 내면을 관찰하도록 해 줍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성경에서 불은 일반적으로 사람을 내면에서 깨끗하게 씻는 하느님의 심판을 나타냅니다. 이 불은 벌써 땅 위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영을 통해서 신자 공동체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이런 불의 시험을 겪으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암시하시는 세례는 번민과 고난과 더할 수 없는 슬픔을 겪으신 뒤에 죽음에 잠기실 당신의 수난입니다.“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분열과 전쟁을 일으키러 오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러나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 얻는 그런 세상의 평화가 아닙니다.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전해 주는 평화를 누리려면, 먼저 불을 통한 정화, 빛과 어둠, 악과 불의, 억압과 무관심, 거짓과 불의한 상황에서 안락한 생활에 맞선 선의 싸움이 이루어져야 합니다.이런 대립 상황은 모든 가정 안에서, 그리고 철저하게 자신의 믿음과 일관되기를 바라는 모든 신자의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유다교 회당이 나자렛 예수님을 하느님의 메시아로 고백한 모든 유다인에게 파문을 선언하였을 때(기원후 90년 얌니아 회의) 동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이런 체험을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어떤 가족애와 물적 집착보다 하늘 나라의 가치를 첫자리로 놓으면서 하느님 앞에서 전적으로 헌신하고 완전히 자유로운 자세를 취하도록 제시합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출저:https://maria.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