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3장 1-6절;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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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 1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2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4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5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6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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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표상을 하느님의 구원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 주는 표징으로 제시합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 성소의 특징이 세례자 요한 안에서 드러납니다. 성소는 하느님의 심오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의 위대한 예언자들의 전통을 보면 하느님 말씀은 광야에 있는 세례자를 향하여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요한을 태중에서부터 선택하셨는데, 마리아의 태중에 계신 예수님에 힘입어 거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한의 역사는 사랑의 역사이고 그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그렇게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은 예언자가 되고 메시아의 선구자가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례와 교회에 속함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 그분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의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대상이며 그분께서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을 받으셔야 할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인 성소는 하느님의 소중한 도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광야에서 요한은 하느님께서 그를 당신의 도구로 삼으실 수 있도록 증명해 보였습니다. 우리도 하느님께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맡겨 드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끝으로 성소는 강한 선교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은 하느님께만 매여 있지 않았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에게도 심오하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자신의 백성이 회개할 필요성을 온전하게 느끼는 감수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소유가 되어, 다가오는 새 시대에 교회 선교의 선구자라는 의식을 갖고 새 복음화를 위하여 계약의 하느님과 협력하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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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성소란 이는 넓은 의미로 소명(召命)을 말한다. 원래 소명이란 신하를 부르는 임금의 명령이나, 여기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말한다.

1.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이야기 해봅시다.

2. 평신도 성소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 나는 공동체 안에서 수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성직자와 공동책임을 가지며 능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 해보며 만약 수동적으로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 능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렇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 이야기 해봅시다.

3. 사회 교리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 세상에서 부유한 이 나라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반 그리스도적인 측면이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이어가야 할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하기: 오늘 말씀(묵상/동영상)을 통해 내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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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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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흔히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은 서로 대조되는 인물로 소개합니다만, 사실 세례자 요한만큼 예수님과 공감할 수 있는 분도 드물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마지막 예언자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선구자였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두고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과 자신을 구분하려고 요한은 자기를 ‘광야의 소리’로 겸손하게 밝혔고, 설령 자기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도 고백하였습니다. 사실 회개도 겸손에서 출발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하여, 이스라엘에게 요한이 촉구했던 회개가 무의미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오심을 준비하고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렇게 준비한 그 길로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해마다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는 우리가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면서 주님의 오심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치우는 때입니다.
하느님께 궁극적인 희망을 두지 못하여 우리가 깊은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면, 또는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믿으면서 하느님 앞에서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마치 그분의 도우심이 전혀 필요 없는 것처럼 거만을 떨고 있다면,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스스로 가로막고 있는 셈이 되겠지요.
세례자 요한의 권고대로, 오늘 주님께서 오시는 길목에서 걸림돌 하나쯤은 치우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저: https://maria.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