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오늘은 성소 주일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소,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신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첫영성체를 하고 복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신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지금까지 신학생으로 잘 지내고 있는데,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고 그저 나만이 바라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에 휩싸여 신학교를 그만둘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밤낮으로 기도해 주시던 부모님과 교우들의 얼굴이 떠올라,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오던 사제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 저는 죽어도 신부가 된 다음에 죽어야겠습니다. 처음부터 제 마음에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넣어 주지 마시지, 이제 와서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시면 어찌합니까? 절대 안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 박박 우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기도처럼 될까 봐 주님의 기도도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악을 쓰며 한 달을 씨름하니 모든 힘이 빠져 나중에는 입을 열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런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아!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 하느님과의 일치, 성인이 되는 것이구나! 그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한 길이 여럿 있는데, 어떤 이는 사제성소, 어떤 이는 수도 성소, 어떤 이는 혼인 성소를 선물로 받는 것이구나. 그 선물은 더 귀하고 덜 귀하고, 크고 작음이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느님이라는 큰 산을 오르는 여러 길 가운데 하나일 뿐이구나. 주님께서 ′너의 길은 이 길이 아니고 저 길이다.′ 하신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가면 되는구나. 다만 지금은 신학교에 있으니 내가 받은 선물은 사제의 길이겠구나. 그렇다면 나는 그 선물에 합당한 이인가?’
그래서 그날부터 제가 받은 그 엄청난 선물에 합당한 이가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그것을 실천하여 잘 준비하고자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선물은 무엇이고, 그 선물에 합당한 이가 되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은 특별히 사제성소와 수도 성소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응원하는 날입니다. 그들이 받은 성소의 길을 잘 걸어가도록 기도하고 힘이 되어 줍시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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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요한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나는 문이다.”, “나는 길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는 형식으로 “나는 ……이다.”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나는 목자다.”가 아니라 “나는 착한 목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나쁜 목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에제키엘서나 즈카르야서를 비롯한 구약의 예언서들에서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있었던 나쁜 목자들을 비난합니다. 목자가 약한 양은 전혀 돌보지 않는 가운데 오히려 튼실한 양을 잡아먹거나 양털을 깎아서 돈만 벌려고 한다면 분명 나쁜 목자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런 나쁜 목자들을 없애시고 당신 마음에 드는 착한 목자를 보내시겠다고, 아니 당신께서 몸소 양들을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양털만 깎아 팔아먹는 나쁜 목자가 아닌,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성소 주일에는 여러 가지 행사도 하면서 많은 젊은이가 착한 목자 예수님을 따라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기도도 하겠지요. 목자가 되려고 한다면 반드시 착한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이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삶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는,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잘못된 것입니다. 따뜻한 양털 덮고 세상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목자가 되는 것은 성소가 아닌 하나의 직업일 뿐입니다. 착한 목자가 되려면 먼저 침묵과 인내 가운데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성소 주일에 복자 바오로 6세 교황님과 함께 기도합시다. “오소서 성령님,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는 사제들에게 넓은 마음을 주소서. 침묵 가운데 힘차게 타이르시는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으며, 온갖 불미한 야심과 덧없는 인간 경쟁을 전혀 모르는 마음, 거룩한 교회만을 걱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보려는 넓은 마음을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