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_루카12장35_40

십자가의 사랑

190205 황창연신부 매일미사 강론: 십자가의 사랑

제1독서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6,22-27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6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4,13-15 사랑하는 여러분, 13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14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15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은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부르는 설입니다. 교회 달력인 전례력으로는 이미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하였지만, 많은 사람이 설을 맞이하면서 새해를 시작합니다. 세월에 마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 떠오른 해가 어제 떠오른 해와 다르지 않지만, 출발선에 선다는 것은 늘 새로운 활력과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합니다. 새해에는 지난해보다 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으로 여러 가지 다짐을 하며 설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그동안 떨어져 살았던 가족들을 서로 찾아보고, 돌아가신 조상들과 가족들을 기억하며, 그분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가족의 소중함과 따뜻함을 확인하는 명절인 오늘, 그동안 바쁘게 살던 것을 잠시 멈추고 우리의 가정과 가족들을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몇 시에 오든지 잘 맞이할 수 있도록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새해를 맞이하면서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듣는 것이 조금 어색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대상이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이어야 그 깨어 있음이 무거운 짐이 되지 않고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게 주님의 오심을 기쁘게 기다릴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 해를 나누고, 한 달을 나누고, 한 주를 나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영원의 시간 안에서 우리에게 변함없는 사랑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손을 맞잡고 하느님 앞으로 나아갑시다. 우리에게 좋은 모든 것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시는 하느님 앞에 합당하게 나아갈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가 이 설에 서로에게 빌어 주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이성근 사바 신부님 (2019, Feb 6th).  Retrieved from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

 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나누어 봅시다.

2) 신앙적으로 “깨어있다”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요?

3) 사회생활을 하며 이해관계에 얽매여서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주님의 가족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4)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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