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_마르코5장1_20

죄의특성

190205 황창연신부 매일미사 강론: 십자가의 사랑

제1독서

<너희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신명기의 말씀입니다. 4,1.5-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5 보아라,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게 될 땅에서 그대로 실천하도록, 나는 주 나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규정과 법규들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었다. 6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7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8 또한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9 너희는 오로지 조심하고 단단히 정신을 차려,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것들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또한 자자손손에게 그것들을 알려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I

제1독서에서 모세는 시나이산 계약 때 하느님께서 명하신 율법 규정과 법규들을 잘 지키고, 그 가르침을 잊지 말며, 자자손손에게 일러 주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그래야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종종 율법 규정을 어기시는 모습을 보이시기에, 예수님을 마치 하느님의 율법을 없애러 오신 분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당신께서는 율법을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입니다. 율법의 정신을 다시 올바로 세우시어 모두가 하느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그래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 곧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려고 오셨다고 말합니다.
오늘 대목에 이어지는 산상 설교(마태 5―7장)는 모두 모세의 율법 규정을 새롭게 해석하시는, 곧 그 정신을 바로 세우시는 말씀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두고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시며, 그 뜻을 지키는 사람만이 약속의 땅인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7,21 참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참된 율법 정신을 알고 있는 위대한 스승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삶으로써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새 계약의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 가르침을 믿음의 후손들에게 계속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이들은 하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오늘의 묵상 II

‘아우토반’이라는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독일의 고속 도로 이름입니다. 우연히 이 도로에서 운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길이 잘 닦여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운전자들이 추월선과 주행선을 확실하게 지키기 때문에 안전하게 10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운전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기회에 이집트에 갔습니다. 땅이 넓은 곳이라, 독일만큼은 아니지만 고속 도로가 어느 정도 잘 닦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운전자들은 차선을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고속 도로임에도 무단 횡단을 하는 이들까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균 60킬로미터 정도밖에 달릴 수 없었지만신경을 곤두세워야 하였습니다.

이 두 나라의 운전 상황이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도로 사정이 약간 다르기는 합니다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도로 규칙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도로 규칙은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 줍니다. 그리고 그 규칙 자체는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니 힘이 있는 사람이라도 그것을 지켜야만 하고, 힘이 없는 사람도 당당하게 운전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정녕 예수님께서는 율법 안에 사랑을 담아 그 법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어 율법 안에서도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율법을 더 이상 우리를 옭아매는 덫이 아니라 온전하고 자유롭게 하느님 나라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징검다리로 삼게 해 주셨습니다. 유다인이든 이민족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말입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이야기 해봅시다.

2) 죄를 지으면서 합리적으로 생각해본 경험이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3) 내가 하는 활동이 주님과 멀어지게 되는줄 알면서도 친구들 때문에 죄를 지은 경험이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하늘에서 가장 작은 사람의 모습을 이야기 해봅시다.  죄를 지으면서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어. 지옥은 안 가겠지”라고 생각한 경험이 있나요?

5) 친구나 식구와 함께 할 수 있는 봉사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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