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_루카14장25_33

예수님 제자의 자격

매일미사 강론 : 예수님 제자의 자격

제1독서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9,13-18
13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14 죽어야 할 인간의 생각은 보잘것없고, 저희의 속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15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흙으로 된 이 천막이 시름겨운 정신을 짓누릅니다. 16 저희는 세상 것도 거의 짐작하지 못하고 손에 닿는 것조차 거의 찾아내지 못하는데 하늘의 것을 밝혀낸 자 어디 있겠습니까? 17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18 그러나 그렇게 해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이제 그를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으십시오.> 사도 바오로의 필레몬서 말씀입니다. 9-10.12-17
사랑하는 그대여, 9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 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10 이러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12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13 그를 내 곁에 두어, 복음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대 대신에 나를 시중들게 할 생각도 있었지만, 14 그대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15 그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6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면, 그대에게는 인간적으로 보나 주님 안에서 보나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17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5-33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내 제자가 될 수 없다.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1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참 어려운 말 같습니다. 그전에 서품 받을당시 주교님께서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자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요””라고요. 한참 이 말씀을 묵상한 저는 그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사제가 된 이유는 물론 신자들을 위해 살아야되지만 가장 먼저 우리는 예수님과 주님을 사랑하는거라고요. 여러분도 신자들, 친구들보다는 예수님을 먼저 사랑하십시요. 만약 사제가 교우들을 먼저 사랑하게 되면 결국에는 지치고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사랑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주님이신걸 우리는 잊으면 안됩니다. 막상 “”이제 사랑해야지””라고 다집하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칩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무한하고 주님은 이 사랑을 아무런 이유없이 저희에게 배푸십니다. 우리는 주님께 받은 사랑을 전달할뿐 입니다. 다른 사람을 먼저 사랑하는기보단 주님을 먼저 사랑하십시요 그리고 정말 가족을 사랑하신다면 주님을 먼저 사랑하십시요. 우리의 부족함은 늘 주님께 의탁하고 고백하면 늘 채워주시는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강두영 암브로시오 신부의 말씀을 요약했습니다.)

오늘의 묵상 2

예전에 아들을 너무나 아낀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시집온 며느리가 아들을 빼앗아 간 것 같아서 며느리를 미워하였습니다. 결국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괴롭힘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아들은 어머니를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아들을 위해서 살았는데 그럴 수 있느냐며 자신을 떠난 아들을 원망하였습니다.사람들은 흔히 ‘사랑’과 ‘소유’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위 어머니가 한 것은 ‘소유’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물건은 소유하는 것이고 사람은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을 물건처럼 소유하려 하니 좋은 결말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오히려 보내 주어야 합니다.성모님께서는 가장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성전에서 봉헌하셨습니다. 아드님이 십자가에서 죽으면 안 된다고 떼를 쓰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하느님께 봉헌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표현 방법입니다. 사랑하면 흘려보내 주어야 합니다.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미워하라’는 말은 ‘봉헌하라’는 뜻입니다. 봉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될 자격을 잃습니다.예수님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투자의 귀재가 자신에게 적은 돈을 맡기면 크게 불려 주겠다고 말한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적은 돈을 아끼지 않고 과감히 그에게 내어 줄 것입니다. 이렇게 더 큰 돈을 위해서 적은 돈이라도 내어놓아야 하듯이, 더 큰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이것이 주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려면 다른 모든 것을 내어놓고 미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아드님까지 내어놓으셨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2019, Feb 7th). 오늘의 묵상. Retrieved from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나누어 봅시다.

2) 여러분들에게 가장 소중한게 무었인가요? 이 가장 소중한걸 주님께 봉헌한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야기 해봅시다.

3)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까?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봉헌을 해야되는데, 어떤 봉헌을 하고 계신가요? 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떤 요소들이 여러분들의 봉헌을 방해하고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사랑’과 ‘소유’를 구분하지 못해서 일이 어긋난 경험이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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