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눈뜨고 삽시다

제1독서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저 녀석을 죽여 버리자.>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7,3-4.12-13 17-28 3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4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12 그의 형들이 아버지의 양 떼에게 풀을 뜯기러 스켐 근처로 갔을 때,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 형들이 스켐 근처에서 양 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지 않느냐? 자, 내가 너를 형들에게 보내야겠다.” 17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가 도탄에서 그들을 찾아냈다. 18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20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21 그러나 르우벤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낼 속셈으로,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피만은 흘리지 마라. 그 아이를 여기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마라.”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내어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이었다. 23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 그들은 그의 저고리, 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다. 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

25 그들이 앉아 빵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보니, 길앗에서 오는 이스마엘인들의 대상이 보였다. 그들은 여러 낙타에 향고무와 유향과 반일향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26 그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27 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그러자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28 그때에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다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었다. 그들은 요셉을 이스마엘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넘겼다. 이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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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3-43.45-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45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46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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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신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양이는 생선을 너무나 좋아해서 생선을 맡기면 고양이가 생선을 먹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방법은 있습니다. 고양이가 생선을 먹지 못하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아예 생선을 먹지 못하는 양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경찰이 자신의 권한과 힘을 범죄자를 위해서 사용한다면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경찰의 힘과 권한은 범죄자를 찾고, 처벌하기 위한 것입니다. 검찰이 자신의 힘과 권한을 가지고 자기 식구의 죄를 덮어준다면 역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입니다. 검찰은 힘과 권한을 공정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이 면책특권을 이용해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면 이 또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이라는 직분으로 얻은 정보로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은 민의를 대변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현명한 국민은 선거를 통해서 충실한 곳간 관리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충실한 곳간 관리자들을 선택하고 있을까요?

오늘 제1 독서에서 나오는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돈을 받고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았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돈을 얻기 위해서 죄를 짓고 있습니다. 돈은 우리들의 거래를 편하게 해 주던 수단이었는데, 돈은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많은 감동을 주었던 마이클 샐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조금 감상적이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책입니다. ‘자본, 경제, 물가, 집값, 일자리’ 거의 모든 것은 ‘돈’과 관련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다운 세상, 참다운 세상, 행복한 세상은 과연 ‘돈’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지요? 아니면 그것은 서로 사랑하고, 나누어주고, 이해하고, 용서해주면서 만들 수는 없는 것인지요? 신앙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감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다면, 나 역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서말씀은 욕심과 시기심 때문에 신앙이 약해지고, 하느님과 멀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시기와 질투를 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질투와 시기 때문에 뛰어난 능력이 있었지만, 은전 스무 닢에 팔려갔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까지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소작인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소작인들은 욕심과 교만 때문에 주인이 보낸 종들을 죽였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이 욕심 때문에 양심을 속입니다. 욕심 때문에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의 내면에 있는 ‘시기와 질투, 욕심과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요셉이 보여주었던 ‘인내와 용서’를 채워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오셨던 예수님의 ‘겸손과 희생’을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참다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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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당당하게 -반영억신부-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서 주신 포도밭이고, 우리는 그 밭의 일꾼입니다.

일꾼은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일꾼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고 주인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열매를 맺어 그 열매를 주인께 바쳐드려야 합니다. 만약 일꾼이 주인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일을 한다면 아무리 많은 일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는 이미 일꾼으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이미 하느님의 일꾼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느님께서 주신 포도밭에서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하느님의 훌륭한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하여도 사랑이 담기지 않으면 적게 일한 것이고, 적게 일한 것처럼 보여도 사랑이 담기면 많은 일을 한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하여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적게 일한 것이고, 적게 일한 것처럼 보여도 해야 할 일을 했으면 많은 일을 한 것입니다. 일꾼은 일꾼입니다. 주인을 꿈꿀 수 있을지언정 주인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통해서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롭지 못한 삶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군중이 두려워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왜 군중이 두려웠을까요? 자기들이 의롭게 살았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의인은 아무도 겁내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도둑이 제발 저린다” 는 옛 말이 있듯이 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 한 것은 곧 자기들이 하는 일이 옳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당당하셨습니다. 바리사이나 수석 사제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하시는 일이 아버지의 뜻에 의합하고 당신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요한5,1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보내주신 아버지의 뜻만을 추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아버지 안에 머무는 만큼 당당히 가실 길을 가야만 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걸으신 그 길을 당당히 걸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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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 마음이 와 닿는 구절을 이야기 해봅시다.

– 신앙생활을 하며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경험을 해본적이 있나요? 어떻게 해쳐나왔는지 이야기 해보고 그런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되나요.

– 우리는 ‘시기와 질투, 욕심과 교만’을 버려야 하고 ‘인내와 용서, ‘겸손과 희생’을 채워야 하는걸 알고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신앙 안에서 ‘시기와 질투’를 경혐했는지 이야기 해보고 ‘시기와 질투’는 어디에서 스멀 스멀 올라오는지 묵상해봅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겸손과 희생’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서로 이야기 해봅시다.

– 과연 우리에게는 당당히 주님의 길을 갈 수 있는 의지가 있나요 아니면 주님의 길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용기가 없어서 주님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지 못했던 일이 있다면 이야기 해봅시다.

케이스 스터디) 친한 친구들이 일요일에 놀러가자고 합니다. “일요일을 성스럽게 지내야되”라고 하자니 “꽉 맊힌사람”으로 인식이 되는 것 같고 마음 한 구석에는 “일요일에는 미사를 봐야되”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경우 여러분은 친구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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