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마리아의 비밀

 

 

 

 

 

 

 

 

 

 

 

 

 

 

 

 

 

 

 

 

 

 

 

 

마리아의 비밀
(El evangelio secreto de al Virgen Maria)
예수의 탄생부터 부활까지 함께한 성모님의 고백
산티아고 마르틴 가톨릭 출판사 2016년
성모님이 마치 일기책을 펼쳐 보이듯 차근차근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듯한 책이다. 의구심을 버리고 마음 깊이 성모님의 삶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삶까지 새로이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은 지금까지 교계에서 좀처럼 시도하지 않았던 소설이라는 형식을 이용해서 성경과 교리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신비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여러 인물과 사건을 마주하는 성모님의 심리 변화와 감정의 이동을 따라가며 이 책을 읽는 동안, 여성이자 어머니로서 성모님이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과 고통을 깊이 알게 되고, 그분의 마음과 영성까지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은 에페소에서 성모님이 요한 사도에게 당신의 삶의 여로를 말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성모님의 감미로운 성심에 빠져 깊이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자 산티아고 마르틴은 마리아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제로 1954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출생했다.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생물학과 신문학을 전공했고, 예수회 코미야스 대학교에서 윤리신학을 전공했다. 1979년 프란치스코 제3회 회원으로 사제품을 받았고, 1988년 ‘마리아의 프란치스코회’를 설립하면서 제3회를 탈퇴했다. 현재 로마 교황청 가정 평의회의 자문을 맡고 있으며, 그가 설립한 마리아의 프란치스코회는 전 세계 38개국에 분원이 있다.
나는 오로지 하느님! 그분을 위해 살아갈 생각이었단다. 이는 어느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내 선택이었지. 하느님조차 메시아의 탄생에 내 동의와 허락을 청했던 것이란다. 나는 내가 지닌 온전한 자유로 하느님께 말씀드렸단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저는 당신께 온전히 의탁합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바대로 행하시고, 주님께서 저를 돌보아 주소서. 저는 당신의 작품입니다. 당신의 영광과 특은이 제게서 거울처럼 빛나기를 바랍니다. 이제 저는 당신 아드님의 모친이 될 것입니다. 이는 또 다른 역사의 시작입니다.”(마리아가 열다섯 살때)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구원하길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라는 적당치 않고 가장 미천한 종을 선택하셨으니 우리는 행운을 얻은 것이고 이 거룩한 계획에 이러쿵 저러쿵 이견을 제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건, 오직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도하는 일과,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일에 놀란 우리 아이를 진정시키는 일입니다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가 천사의 방문후에)

하느님 지금 당신은 저희를 주목하셨고 이렇게 당신 손안에 저희가 있습니다. 저희 딸 안에 씨를 뿌리신 당신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시고, 구원 사업의 모든 여정이 빗나가지 않도록 하소서. 또한 저희에게 영광과 영예를 주지 마옵소서. 저희는 그것을 청하지 않겠나이다. 오로지 당신의 뜻을 실천하고,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당신의 거룩한 뜻이 어긋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마리아의 아버지 요아킴의 기도)내 아들은 이미 태중에서부터 이사야서의 ‘고통 받은 종’의 삶을 실현하고 있었단다. 기적처럼 온 내 아들은 인간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순결하고 고결한 아기였지만 수많은 모욕들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단다. ‘침묵(沈默)’은 강생의 신비를 시작하기 위해 나에게 온 날부터 십자가에서 매달린 순간까지 그의 삶으로 보여준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자 교훈이었단다. 그러나 침묵만이 가장 좋은 교육은 아니었단다. 하느님은 ‘어긋난 길’에서도 ‘당신의 계획’을 훌륭히 이끌어내시는 분이시니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지혜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을 봅니다. 경애하는 분이시여! ‘지혜’라는 것은 ‘이상’이나 ‘사상’이 아니며 어떠한 개념도 아닐뿐더러 손에 잡히는 형태는 더더욱 아닙니다. 지혜란 거대한 강물에서 쉼 없이 흐르는 물에 갈고 닦여 부드러운 돌멩이로 바뀌는 것입니다. 지혜란 ‘삶’이자 ‘생명’입니다. 지혜란 하느님이 사람들을 ‘기억’하시고 다시 그들을 돕기 위에 인간들의 삶에 ‘관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은 인간의 능력이나 지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임을 잊지 마십시요. (특별한 표지들)
하느님은 사랑이예요. 우리는 모든 일이 잘 풀릴때만 사랑을 믿어서는 안되요.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그분의 사랑을 믿어야 해요. 특히 오늘처럼 크나큰 시험에 들때 하느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더욱 입증해야만 해요. 축복된 밤에 천사가 나타나 당신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요? “두려워하지 마시오!”
하느님이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이니 당신의 아들이며 또한 내 아들이기도 한 예수에게는 하느님이 허락하신 시간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예요. 그 시간에 이르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기든 그것은 지극히 높으신 분, 예수의 아버지시고 우리의 아버지신 하느님의 뜻 일 것이예요. (30년의 영광중 요셉의 유언)
하느님이 바로 우리 옆에서 함께 걸어가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 멀리에서 벌어진 거대한 일은 그토록 쉽게 믿으면서 우리 눈으로 직접 본 놀라운 일들을 믿는 것에는 왜 그토록 무딘 마음을 갖는지! 하느님은 크고 강한 바람 가운데도, 지진 가운데도, 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잖니? 불이 지나간 뒤, 엘리야도 조용하고 부드러운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단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느님이 오직 거대한 폭풍이나 천둥처럼 나타나리라는 것을 믿는듯 하구나. (공생활의 시작)
예수가 선포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전지전능하신 분이고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한 모든 사람을 맞아 주시고 위인들을 아브라함과 함께 기꺼이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란다. 예수는 우리가 이 지상에서 천국으로 가는 동안 하느님의 자비는 이 세상에서 범한 우리의 모든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거라고 말했단다.(어두움의 예감)
어머니 이제 드디어 저의 때와 시간이 오고 있어요. 제가 그토록 사랑하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저는 지금 이 예정된 일을 완수해야만 해요. 어머니, 제발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마세요. 물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어머니가 믿음을 잃지 않는 것으로 저는 충분해요. 어떤 일이 벌어지든 하느님 아버지와 제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마세요. 장차 일어날 일들은 그분의 뜻이예요 (예수가 수난의 예루살렘으로 가기전에)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의 어머니가 된 것은 큰 축복이며 너와 함께 살아온 긴 시간은 은총의 날이었단다. 나는 너를 사랑했고 너의 사랑을 받았단다. 내 곁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은 지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화(寶貨)였단다. 언제 어디서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말아 다오. 내가 대지 위에 온전히 서 있기를 부탁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하마. 단 한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말라고 하면 그렇게 하마.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러한 일을 허락하신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을 믿으라고 한다면 또한 그렇게 하마. 이토록 정신을 잡고 있기도 힘든데, 능력을 넘어서는 극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가 그렇게 하기를 내게 바랐기 때문이란다. 그 순간에 내 역할은 창조주이며 피조물인 예수를 지탱하는 것이었단다. 여기를 벗어나자고 말하는 대신, 그 쓴잔을 내가 대신 마시겠다고 자청하는 대신, 나는 예수를 고통의 바다로 밀어 붙였단다. 예수를 그토록 사랑하면서 말이다!우리 모두 예수에게 의지하지 않았니? 그러면서도 예수가 더 이상 자신 스스로 지탱하지 못할 때는 내가 예수를 지탱해주고자 했단다. 예수는 하느님으로부터 내게 왔고, 나는 연약한 여인이지만 예수의 어머니었단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한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 못할 일이 있겠니?하느님! 저의 태중에 당신의 아드님을 잉태하도록 하신 하느님! 지금 예수가 이 지상에서 짊어진 그 무거운 짐을 제가 대신 지도록 허락해 주소서. 제가 그 모든 짐을 다 질수 없다면, 예수의 멍에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할 수 있도록 제게도 나눠 주소서. 전능하신 하느님이 지상에서 그 대가를 대신 치러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제가 되도록 해 주소서. 제게 자비를 베푸셔서 저도 예수의 고통의 일부라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지금 모든 멍에를 짊어지고 가는 예수는 저보다 당신의 도움이 더 간절히 필요합니다. 제가 항상 두려워했던 예언자 시메온이 말한 ‘가슴을 관통하는 것’ 같은 아픔을 제게 주시고, 예수가 절망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요한아, 그 수난이 시작되던 날 밤, 나는 선(善)과 악(惡)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단다. 어둠의 세력이 판을 치는 순간에도 나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예수의 사랑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단다. 나는 예수가 넘어질 때마다 예수를 지탱하고 어둠의 세력과 싸워 승리하도록 끝없이 힘을 불어넣었단다. 예수를 위해 나는 너희 제자들의 배신도 용서 할 수 있었단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을 물리치려면 오직 선(善)으로만 무장해야 한단다. ‘용서’와 ‘자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악(惡)’을 이길 수 없단다.
예수에게 충실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지금 우리는 예수를 믿고 예수가 가르쳐 준대로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단다. ‘사랑’은 ‘미움’이나’ 증오’를 이긴단다. 전능하신 하느님께 예수가 이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하길, 그리고 예수를 지켜주시기를 기도하자꾸나. 그 어떤 일이 벌어지든 우리는 예수가 우리에게 손수 가르쳐 준, 하느님의 사랑이 ‘무한’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단다.
하느님은 예수를 주었다가 다시 거두어 가셨지. 하느님이 내게 주신 생명을 내게서 다시 앗아가신 것이란다. 예수는 지상의 마지막 순간에 나에게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라고 말했단다. 극도로 비참한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끈 이들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했단다. 예수가 사랑한 것처럼 나 역시 그들을 사랑하라고 말이야. 예수가 세상을 떠나고 있을 때 나 역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단다. 예수가 깊은 고독을 느꼈을 때 나 역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고독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체험을 했단다.

그러나, 요한아!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결코 하느님과 멀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단다. 오직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 쏟고 있었단다.
그때서야 비로소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예수의 말이 떠올랐단다. “그래! 예수는 지금 살아있어! 그곳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분명 살아있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예수의 죽음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이란다. 내가 눈으로 본 것만이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단다. 바로 예수가 살아 있다는 확신, 곧 부활할 것이란 믿음이 거대한 파도처럼 내 마음이 밀려오자 나는 곧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단다. 내 심장은 기쁨으로 빠르게 고동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나를 에워쌌던 극심한 피로가 몰려오면서 나는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단다.
나는 방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단다. 마음은 이미 평화를 되찾은 후 였지만 나는 오직 한 가지만을 거듭 기도했단다. 하느님이 예수를 제 아들로 주셔서 감사하고, 제가 어머니로서 예수를 양육할 수 있도록, 또 예수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행복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에 감사 드렸단다. “30여년간 그토록 크나 큰 애정을 받을 수 있는 순간을 주신 것에도 감사드립니다. 하느님! 제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큰 선물을 주셨습니까?” (십자가와 함께 걸어가다)어머니 이제 제가 떠날 시간이 되었지만 결코 슬퍼하지 마세요. 우리는 곧 다시 만날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어머니를 바로 모시고 가고 싶지만 어머니는 아직 지상에서 하실 일이 남아 있답니다. 어머니 두려워하지 마세요! 수난과 죽음을 맞기 위해 떠날 때도 드렸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절대로 의심하지 마시고 사람들에게 이 사랑을 알려주세요.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비록, 하느님이 멀리 계신듯 느껴지더라도 하느님 아버지와 성령 그리고 제가 어머니 곁에 늘 머물고 있다는 것을, 또한 제가 모든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마세요! (승천을 앞둔 예수의 마지막 말)

내가 사랑하는 예수가 이 지상을 영영 떠나고 이와 같은 방문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단다. 이렇게 손에 잡힐 듯이 내 앞에 와있던 예수와의 만남이 이제 마지막이라니! 우리 모자의 영적일치도 끝인 것일까?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것과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결코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란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의심하지 않고 따르는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원하는 바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아니 오히려 이루어지지 않을 때야말로 더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로 인해 ‘희망’이 움틀 것이고, 그 희망이야말로 지금 어두운 사막을 견뎌 나가게 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육신의 죽음이라는 장막 저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예수가 손수 낙원(樂園)의 문을 열어줄 것입니다. 희망 없이는 지상의 수많은 시련과 장애들을 극히 한정된 인간의 시야로 견디고 지탱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있지 않지만 이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마리아가 세상을 떠나기전에 제자들에게)
인간인 예수는 더위와 추위, 배고픔과 갈증, 고통과 기쁨 등 인간이 겪는 모든 감정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는 인간을 도왔지만 동시에 인간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는 ‘하느님’이고 여러분의 ‘힘’이며 ‘성채(城砦)’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동시에 ‘인간’이기에 예수에게는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또한 여러분 마음속에서 우러 나오는 진정한 사랑에 민감하고 여러분이 범하는 ‘죄’나 ‘무관심’으로 인해 ‘고통’을 받습니다. 인간이면서 참 하느님인 예수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몹시 사랑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으로 인해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예수를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고, 사랑하는 하느님을 만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것과 바로 그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 예수가 이 ‘세상’에 왔고, 인간을 그토록 사랑했기 때문에 십자가의 치욕스러운 ‘죽음’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고통(苦痛)은 바로 구원(救援)입니다. 고통은 인간을 정화시킬 뿐 아니라 우리가 다른 이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들에게 힘을 줌으로써 사람 사이에 일치를 이끌어냅니다. 이 또한 신비(神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인류의 모든 고통과 죄를 구원한 것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가끔 찾아오는 ‘고통’ 역시 ‘우리의 선물’을 위해 준비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다시 말합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하느님’과 ‘예수’ 그리고 ‘하느님의 영’을 통해 여러분이 일치하는 것 입니다  여러분의 어머니인 내가 수난 중인 예수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고통 당하는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주기를 부탁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언제나 기억하시고 그분 역시 여러분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요. 사랑하는 마음은 끊임없이 사랑 받기를 원합니다. 오직 ‘사랑’만이 ‘사랑’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기쁨과 눈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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