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_작은사람아

작은 사람아, 작은 사람아

작은 사람아, 작은 사람아

두 수도자가 걸은 프란치스코 순례길!

작은 사람아 작은 사람아
황인수 수사
성 바오로출판사
2015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Prayer of St. Fancis of Assisi)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성바오로 수도회의 두 수도자가 프란치스코의 순례길을 걸으며 글과 사진으로 엮어 낸 순례기이다. 떠남은 새로운 찾음을 전제로 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출발점이며, 익숙함과 안락함을 떨쳐내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돈이 모든 것이 기준이 되는 세상에서 프란치스코의 거룩한 가난의 비밀을 알아보고자 성인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다. 그 길을 걸으며,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성인을 만나고, 태양의 찬가를 노래하며, 눈에 닿는 모든 것 안에 깃들어 있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한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더욱 가난해 지려고 노력한 성인을 따라 아씨시에서 리에티로 그리고 로마와 라베르나를 거쳐 다시 아시로 걸어가며 가난의 참 의미를 되새겨본다.

프란치스코는 아버지를 떠나려했다. 잡으려는 아버지와 떠나려는 아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계획이 있고 아들에게는 아들의 꿈이 있다. 아버지의 세월은 지나갔으나 그에게는 힘이 있고 아들에게는 꿈밖에 없으나 떠나지 않으면 그는 어린아이로 남을 뿐이다.

말을 타고 가던 부잣집 아들 프란치스코가 어느 날 길을 멈추고 전에는 역겨워하던 나병환자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고 그의 친구가 된다.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너는 누구의 친구인가?”, “너는 누구와 함께 있는가?” 나병환자는 두려운 존재이다. 그 두려움과 역겨움을 무릅쓰고 다가가는 것은 인간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 숨은 하느님 사랑의 일일 것이다. 산 다미아노의 십자가에서 프란치스코를 부르셨던 하느님이 성인과 함께 나병환자를 껴안고 입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가난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형제의 가난을 볼 수 없고, 가난한 형제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랑이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결국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것이고 그것을 증명할 방법도 따로 있지않다. 다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숨어있는 것이고, 사람이 사랑할때 우리는 그 사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가난을 사는 방법은 뻗치는 욕망을 끊는 것이다. 없는 것을 거머쥐고 싶은 욕망을 끊어버리는 일이다. 그 다음은 이미 갖고 있는 것, 지키고 싶은 것을 버리는 일이다. 앞의 것이 밖으로 향하는 욕심을 버리는 일이라면, 뒤의 것은 내 안에 숨은 욕심을 비우는 일이다. 나에게 없는 것을 얻으려는 욕심이나 내게 있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두려움이 욕망의 시작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마음속에 내가 없는 사람이다. 내가 있으면 나를 주장하고, 마음에 안 드는 너를 밀쳐낸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내가 없고 누구도 그 마음 안에 들어와 머물 수 있으며 누구나 그의 마음에 든다. 그의 마음은 원하는 이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하느님 나라이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가 그의 것이다라는 말은 그가 하느님 나라다라고 바꿀수 있는 것이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기억을 못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올챙이도 내가 아니면 개구리도 내가 아니다. 나는 온전한 나를 찾아가고 있는 참이다. 성인도 그런 여행을 떠났던 것이 아닐까? 그는 마흔 다섯의 나이로 그 목적지에 도달했고 그 목적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

삶의 모든 시간은 우리가 모르는 씨앗을 품고 있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 살아가는 시간, 살아갈 시간 모두가, 그 시간이 품은 씨앗을 대면하는 시간, 그 씨앗을 싹튀우고 자라게 하는 시간이다. 그곳에서 홀로 하느님과 함께 그분이 내게 주신 시간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우리에게 간절한 것들, 때로는 허기로, 때로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들도 그것을 끝까지 따라가면 우리 속의 깊은 갈망과 만나게 된다. 그것은 구원에 대한 갈망, 사랑에 대한 갈망이다. 그 갈망을 따라 충실히 걷은 사람은 어느 순간 이웃에게 구원을 가져다주고 싶은 갈망을 느끼게 된다.

어린시절을 잊어버리면서 우리는 아버지도 함께 잊어버리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볼보시고 지켜 주시는 아버지를 잊으면서 우리는 내가 걱정하고 내가 계획하고 내가 일하려고 한다. “수고하며 짐진 여러분은 모두 나에게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을 쉬게 하겠습니다.”라는 예수님의 초대는 아드님이신 주님이 우리를 당신 아버지께로 인도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지금 내 삶이 힘들다면 걱정과 근심에 사로잡혀 마음이 쫒긴다면, 우리는 아버지없이 살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없는 고아로 매사에 종종걸음을 치며 걱정 속에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평화의 기도의 한 구절이다.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역설인가? 우리는 받음으로써 소유하려하고, 용서하기전에 용서받으려하며, 자기를 지키면서 영생을 추구하려합니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이윽고 보이지 않게 된 작은 사람, 프란치스코! 내가 없어진다는 것은 모든 곳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하느님 안에 들어가서 모든 이 안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곧 사랑이 그의 삶이 된다는 뜻이다. 하느님 속으로 사라져서 큰 하느님의 집으로 드러나게 된 작인 사람의 생이 바로 성인이 삶이 아닐까?

순례길 곳곳에서 성인의 흔적을 살피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은 참 나를 찾아 떠나는 피정의 순례길이 된다. 이렇듯 이 책은 독자들에게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살펴보게하고 그분의 영성을 되새기며 오늘날 어떻게 프란치스코 성인을 살아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세상도 또 세상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안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1요한, 2,15-16)”

저자 황인수(이냐시오) 신부는 성 바오로수도회 수사로서 저서로언제나 새로운 길’ ‘깨어나는 기도’,’칠죄종 일곱가지 구원과 번역서파스카등이 있으며 성바오로 수도회 출판사 전 편집장, 수도회에서 양성을 담당하고 있다. 평화방송강의, 각종 특강, 피정, 북콘서트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다.

<묵상나누기>

  • 이미 갖고 있는 것, 지키고 싶은 것을 버리는 내안에 숨은 욕심을 버리는 것에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 어린 시절을 아버지를 잊고 고아로 매사에 종종걸음을 치며 걱정 속에 뛰어다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나요?

  • 우리는 받음으로써 소유하려하고, 용서하기전에 용서받으려하며, 자기를 지키면서 영생을 추구하려 합니다. 우리의 욕망으로 부터 어떻게 하면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 우리에게 간절한 것들을 끝까지 따라가 깊은 갈망속에서 주님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갈망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가톨릭 카톨릭 복음나눔 복음말씀 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말씀나눔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기독교 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