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_루카1장39_56

2020년 성모 승천 대축일

제1독서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둔 여인>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1,19; 12,1-6.10-19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 궤가 나타났습니다. 12,1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2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3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크고 붉은 용인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4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5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6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 10 그때에 나는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5,20-27ㄱ 형제 여러분, 20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24 그러고는 종말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25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26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27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9-56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가톨릭 교회가 마리아에 대하여 믿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마리아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은 또한 그리스도 신앙을 밝혀 준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487항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가운데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성모 승천에 대해서도 966항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합니다. “마침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시고,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지시어, 군주들의 주님이시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셨다. 거룩한 동정녀의 승천은 당신 아들의 부활에 특별히 참여한 것이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앞당겨 실현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마리아의 승천은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로마 8,30)라는 말씀이 마리아에게서 실현되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승천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 헌신적인 태도,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겪으신 몸과 마음의 수고와 시련의 삶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고 온전히 하느님 안에 받아들여져 완성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복음은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어머니께 드리는 엘리사벳의 인사에 대한 응답으로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을 찬양하십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겸손함이 드러나는 이 노래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비천한 여종을 굽어살피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도록 성모님께서는 맏물이신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오게 하셨고, 또한 재림하시도록 ‘가난한 이들’의 희망을 노래하셨기 때문입니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방법>

오늘은 성모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날을 기념합니다. 예수님이야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다시 아버지께 승천하시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는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이십니다. 그런데도 당신 아드님처럼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사실은, 우리 또한 성모님처럼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줍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 그 순간에만 하늘로 오르셨던 것일까요? 성모님은 살아계셨을 때부터 하늘로 향하고 계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하늘로 향하지 않으면 마지막에도 하늘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늘이라는 말은 땅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 하늘로 향하든, 땅으로 향하든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죽음과 함께 그 방향의 끝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하늘로 걷고 있는지, 땅으로 걷고 있는지 반드시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려면 내가 어떠한 추진력을 사용하는지 알면 됩니다. 모든 발사체는 뒤로 뿜는 추진력이 있습니다. 내게서 뿜어나오는 추진력이 나의 속도와 방향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만약 나를 통해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가고 있다면 나는 분명히 물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노를 저으며 물줄기를 거슬러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홍주연 작가의 『더 해빙』입니다. 홍주연 작가는 사업 실패로 돈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했던 아버지 밑에서 컸습니다. 아버지는 자린고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굴비였습니다.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하여 홍주연 작가가 마지막에 굴비라도 실컷 드시고 가시라고 10마리 보내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도 아껴 드시다 5마리를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병원도 굳이 6인실을 선택하여 죽을 때까지 돈을 아끼셨습니다. 그러나 홍주연 작가는 ‘그렇게 돈을 아끼면서도 왜 아버지는 평생 가난하셨을까?’를 궁금해하였습니다. 물론 자신도 돈을 쓰는 것에서 항상 불안하고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어렸을 때부터 비범하였고, 지금은 전 세계 재벌들의 컨설팅을 해 주고 있는 이서윤 선생을 만납니다. 그녀는 수십만 명의 부자들을 연구하여 ‘해빙’(Having)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인물입니다. 그녀는 홍주연 작가에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기쁘게 쓰라고 말해줍니다. 돈을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라, 돈을 쓰면서 기쁜 마음이 들 때만 쓰라는 것입니다. 꼭 필요했던 것, 혹은 누군가를 도와줄 때는 돈을 쓸 때 마음이 기쁩니다. 그렇게 무언가를 기쁘게 내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원천으로 향하게 됩니다. 원천으로 향할수록 더 많이 받게 됩니다. 원천은 그것이 솟아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돈도 물처럼 흐름이 있는데 기쁘게 흐르는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길 때 부족함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이렇듯 무언가를 기쁘게 내어줄 때, 그것이 무엇이든 그 기쁘게 내어주는 것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내가 용서를 기쁘게 하고 있다면 자비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향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면 진리이신 주님께 향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 자체이신 주님께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거나 질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미움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빨리 회개하지 않으면 되돌아올 수 없는 만큼 가버리고 맙니다.
구약에 하늘로 승천한 사람이 두 명 나옵니다.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에녹이 하늘로 승천한 이유는 ‘하느님과 함께 걸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걷는다는 말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누군가의 존재가 나와 함께 있다면 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뜻이 계속 나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함께 있다면 하느님의 뜻이 나를 괴롭힐 것이고, 그 뜻을 받아들여 실행한다면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늘에서 온 가브리엘 천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모 마리아는 신약의 에녹이셨던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자 하느님의 아드님을 세상에 내어주셨으니 그 추진력으로 말씀의 고향으로 향하신 것입니다.  그다음에 엘리야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늘로 오르며 자신의 제자 엘리사에게 자신의 망토를 떨어뜨렸습니다. 엘리사가 그 망토로 강을 치니 강이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이는 마치 홍해를 가를  때 모세가 들었던 지팡이와 같은 힘을 지닌 것입니다. 바로 ‘성령’이고 ‘은총’을 상징합니다. 누군가에게 은총을 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은총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눈치채십니다. 포도주는 은총입니다. 교회에 은총이 부족한 것을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총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갑니다. 그리고 그 은총을 내려주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렇게 성모님은 교회에 은총을 중개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 가셨습니다.  하늘로 오르는 방법은 지금부터라도 하늘에게서 오는 것을 기쁘게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말씀과 은총의 중개자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한 인간으로서 우리가 쫓겨났던 에덴동산에 어떻게 다시 오르는지 보여주신 최초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나눔

1.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이야기해 봅시다

2. 현재 우리 자신이 어느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 우리의 결정에 하느님이 함께 하시나요?

3. 돈을 기쁘게 쓴다는것은 어떤것일까요? 여러분이 기쁘게 돈을 사용한 경험을 공유해봅시다.

4. 과거를 돌아보았을 때 가장 아쉬운 일은 무엇이고 내일은 어떻게 변화하고 싶은지 나누어 봅시다.

5. 성모 마리아가 살아 계셨을당시 남편없이 여자 혼자 아이를 잉태하는건 죽음까지 이를 수 있는 행위였다고 합니다. 요즘 시대에 종교와 법이 대립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고 있는 신앙적인 활동이 세상과 대립이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 낙태를 반대하십니까? 신앙인은 거두절미 하고 낙태를 반대해야 되나요? 낙태를 한 신자는 구원받을 수 없나요? 예2 욕심을 버리다 나만 가난하게 된다면  예3 이슬람국가에서 카톨릭 신앙을 추구할때 겪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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