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목사의 질문/김웅렬 신부님의 응답
1.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느 것이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
A. 우리들은 태어났을 때 작은 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음식을 통해서 우리든의 살과 뼈가 자라난다. 분명히 먹은 것은 음식이지만 우리의 살과 피로 변한다. 들어가는 것과 만들어진 것은 다르다.
빵과 피가 주님의 몸과 피가 되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러 음식을 먹지만 그 음식이 살과 피와 뼈를 만든다.
2. 예수 그리스도가 그 작은 밀가루 제병 안에 계시다는 것이 가능한가?
A. 주위에 풍경을 보아라. 풍경에 비해서 당신의 눈이 얼마나 작은지. 당신의 작은 눈 안에 저 드넓은 풍경이 들어간다.
3. 한 몸이신 예수님이 모든 제단과 축성된 제병들 안에 동시에 계시는 것이 가능한가?
A. 하느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거울을 바닥에 던져봐라. 작은 조각 조간 모두, 같은 이미지를 담고 있다. 온전한 거울 안에도 내가 보였고 바당에 던져져 깨진 유리 조각 안에도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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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사제가 되어 처음으로 어버이날 아침에 부모님께 찾아갔습니다. 그동안에는 신학교에서 전화로만 축하를 드렸는데, 이번에는 직접 뵙고서 선물과 용돈을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부모님께서 저를 보시고 하신 첫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아침 먹었니? 밥 차려 줄까?” 평소에도 부모님 댁에 가면 부모님께서 차려 주신 밥을 먹고는 하였습니다. 부모님께서 주시는 내리사랑을 그대로 받는 것만으로도 효도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말입니다. 제가 밥을 차려 드려도 부족할 텐데 어버이날마저도 여전히 밥을 차려 주시려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면서도 감사하였습니다.
여러 해를 외국에서 지낼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칠순 가까이 되신 어머니께서 주민 센터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시고 이메일 계정을 만드셨습니다. 아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보내신 이메일에는 어김없이 먹는 것과 관련된 질문이 있었습니다. “한국 음식은 좀 먹니?” “생일인데 미역국은 누가 끓여 주니?” “살이 너무 빠지지는 않았니?”
이렇게 자식이 잘 먹고 지내는지 늘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하느님께서도 가지고 계십니다. 아니 그보다 더하십니다. 단순한 음식, 썩어 없어지는 양식이 아니라 영적인 음식,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양식을 걱정하시어 우리에게 당신 아들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사 때마다 이 사랑의 양식을 받아 모시고 있습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