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9장 18-24절;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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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24

18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9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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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믿는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믿는다.”는 믿음의 내용에 대한 지적인 이해와 “내가 누구를 믿는다.”는 믿음의 대상에 대한 인격적 고백을 포함합니다. 내가 믿고 있는 교리의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믿는 하느님에 대한 인격적 신뢰 역시 중요합니다.

신앙 행위에서 이 둘은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신자는 교리 공부나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정작 하느님을 삶에서 친숙하게 느끼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신자는 교리나 성경은 잘 모르지만, 하느님을 철석같이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는 일에만 전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을 때에는 그분의 인격에 대한 매력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심 예수님께서 왕의 자리에 오르면 한자리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세속적 욕망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제자들의 속내를 물으십니다.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정답을 말했지만, 그가 생각한 그리스도는 힘과 권력을 지닌 메시아였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믿지는 못한 것입니다.

성당에 오래 다녀서 아는 것은 많아도 신심이 깊지 못한 신자가 있는가 하면, 세례 받은 지 오래되지 않았어도 믿음이 깊은 신자가 있습니다. 믿음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 계신 하느님을 느끼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려는 실천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출저:https://maria.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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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나 단어를 이야기 해봅시다.

    – 베드로 입장에서

    – 제자들 입장에서

    – 군중들 입장에서

2.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사실 사탄도 예수님을 두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으로 고백하였습니다(마르 1,24; 루카 4,34 참조).  나는 예수님의 xxx라고 생각합니까? 내가 예수님의 xxx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예수님과 동행해야 예수님의 xxx의 참된 모습인지 이야기 해봅시다.

3. 나만의 십자가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십자가 혹은 주님이 주신 십자가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잘 감당하고 있는지 외면하고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나만의 십자가를 잘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하기: 오늘 말씀(묵상/동영상)을 통해 내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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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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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이러한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친구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자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지. 그럼 그리스도라는 분에 대해 꽤 알겠군.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어디서 태어나셨나?” “모르겠는걸.” “돌아가실 때 나이는?” “모르겠네.” “설교는 몇 차례나 하셨나?” “몰라.” “아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서 그리스도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군!”
친구의 연이은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하던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네 말이 맞네. 난 사실 아는 게 너무 적어 부끄럽네. 하지만 3년 전 나는 주정뱅이에다가 많은 빚을 지고 있었지. 내 가정은 산산조각이 났고 저녁마다 아내와 자식들은 내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무서워했네. 그러나 이제는 술도 끊고 빚도 다 갚았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귀가하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릴 정도라네. 우리 집은 이제 화목한 가정이 되었네. 이게 모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나에게 이루어 주신 것이라네. 이만큼은 나도 그리스도라는 분에 대해 알고 있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을 누구로 여기는지 물으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하여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제대로 고백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에 대하여 아무리 잘 알고, 또 아는 만큼 대답하였다고 해도 그것이 가장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사탄도 예수님을 두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으로 고백하였습니다(마르 1,24; 루카 4,34 참조). 그렇다고 해서 사탄이 모범적인 신앙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당신에 대하여 머리로만 알고 입으로만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실제 우리의 삶에서 메시아이신 그분의 모습처럼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원하십니다. (출저:https://maria.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