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3장 15-16.21-22절;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렸다

모임 주의사항

– 나눔은 남을 가르치거나 토론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임 전체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활동을 감지하는 시간이다.
– 묵상 나눔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나눔을 비판하거나 토론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해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나눔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웃 안에 함께 계시면서 말씀의 의미를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총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고 마음에 새긴다.
– 개인적 성격을 띤 나눔 내용은 그룹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다. 모임에서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외부에 퍼뜨리지 않는게 형제애의 실천이다.
– 발표할 때는 반드시 단수 1일칭(나)으로 해야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3인칭(그 또는 그들) 이나 복수 1인칭(우리)으로 객관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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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렸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5-16.21-22

그때에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21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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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예수님 당시에 사해 부근의 쿰란에는 독실한 마음으로 수계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오늘날의 수도 생활처럼 공동체를 이루고 엄격하게 고행하며 단체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공동체에 입문하려면 물로 씻는 예식, 곧 정화 예식을 거쳐야 했습니다. 여기서 세례는 회개를 전제한 죄의 용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례가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고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라면, 굳이 예수님께는 세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가시어 세례를 청하실 때, 요한도 당황하여 그분을 말리려 하였습니다(마태 3,14 참조).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요한이 옳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세례를 통하여, 죄인들과의 연대를 드러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듯이,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우리와 결합하시어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주님의 종은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음으로써 민족들의 빛이 됩니다. 제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만민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그분께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모든 이를 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의인들과 건강한 이들만 당신 백성으로 삼으신다면, 예수님께서 모든 이의 주님이 되실 수는 없으셨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드님으로서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권위와 능력은, 높은 이들의 복종을 받아 내시는 것이 아니라 약하고 죄스러운 모든 이를 받아들이시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리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우리와 같은 운명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고 그저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출저: https://maria.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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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1.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이야기 해봅시다.

2. 세례자 요한이 주님의 길을 인도하는 것 처럼 능동적(자발적)으로 구원사업이나 봉사활동을 기획한 경험이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아직 해보지 못하였다면 어떤 주님의 사업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 해봅시다.

3. 예수님은 죄인들과의 연대를 드러내십니다. 나는 나를 낯추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연대를 한 경험이 있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아직 해보지 못하였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어떤 자세로 연대를 하면 좋을지 이야기 해봅시다.

4. 결심하기: 오늘 말씀(묵상/동영상)을 통해 내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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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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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세례를 통하여 모든 신자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임에도 하느님의 자녀처럼 살지 못하는 이유는, 세례를 물로만 받고 성령으로는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믿음’을 선물합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믿어야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늑대에게 키워진 아이는 자신이 늑대라고 믿을 것입니다. 자신이 늑대라고 믿으면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닐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사람이 되려면 자신이 사람임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은 믿는 대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세례는 이렇듯 내 정체성이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 곧 ‘하느님’임을 확고하게 믿게 만드는 예식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하느님입니다. 사람의 자녀는 사람으로 살고,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으로 삽니다. 사람의 자녀는 세상에 집착하며 살고,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 뜻에 ‘순종’하며 삽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는 오늘 제1독서에서처럼 또한 “종”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순종하는 자녀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께 순종하시어, 오늘 제2독서에서 증언하는 것처럼, 세상을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람임을 믿으면 두 발로 걷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본성상 사랑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전삼용 요셉 신부)